[송창섭의 배우며 가르치며]

▲ 송창섭 시인.

리오그란데의 물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광활한 대지의 어디선가 애매한 죽임을 당한 인디헤나의 가슴 아픈 넋과 지혜의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구천을 떠도는 혼들의 안식과 평화를 위해 잠시 기도하고 묵상하기 위해 성호를 긋습니다. 

‘하느님, 침탈의 아픔을 안고 쉬이 잠들지 못하고 있는 여기 이 땅의 영혼들을 평화로운 안식처로 이끌어 주소서.’ 

광대한 평원에는 사막메리골드, 클러릿컵선인장, 사막버드나무, 바위쐐기풀 따위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무가 서식하며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사이로 만든 길을 따라 먼지를 일으키며 달립니다. 차창 밖으로 잭래빗(Jackrabbit), 캥거루랫, 로드러너, 코요테, 황금독수리 등 뛰거나 날아다니는 동물들이 심심찮게 눈에 띕니다. 저들이 누리는 평화로움의 그늘 뒤에는 오래전 지워졌어도 지울 수 없는 역사와 민족의 아픔이 서려 있음을 다시 보게 됩니다. 

미국과 멕시코의 경계를 이루는 리오그란데가 가장 협소한 곳을 찾았습니다. 강폭이 25m 안팎에 불과합니다. 멕시코 사람들은 이른 아침, 강을 걸어서 혹은 말을 타고 건너와 수제품들을 놓아두고 되돌아갑니다. 인형, 거미, 전갈 등 다양한 비즈공예 소품이었습니다. 물건마다 가격표를 붙여 놓고 자유롭게 사 가라는 일종의 자율 거래였습니다. 

주위에 펼쳐져 있는 거대한 기암괴석과 평원 그리고 말을 타고 종횡으로 달리는 솜브레로(Sombrero, 챙 달린 멕시코 모자)를 쓴 멕시칸들 사이로 각별히 이목을 끄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강 가운데에 쌓인 모래에 식탁과 의자를 놓고 멕시코인들이 술과 더불어 그들의 고유한 대중 음식인 타코(Tacos)와 부리토(Burritos)를 팔고 있지 않겠습니까. 모래바(Sand bar)였습니다. 푸른 하늘과 들녘을 배경 삼아, 흐르는 강물에 발을 담그고 들이켜는 멕시칸 맥주가 입맛을 끌었습니다. 운치까지 더한 맛이라 여기니 자리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강 언저리에는 빅밴드를 찾은 외국 관광객들을 위한 안내문도 반듯이 적어 놓아, 우리의 시골장터를 연상케 했습니다. 그들이 먹고사는 방식, 소위 생존 전략이 특이하면서 처절하고 신기해 한참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끊기지 않고 명맥을 이어온 그들의 끈질긴 삶이 위대해 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발길을 돌려 협곡 보쿠어스캐년으로 나아갑니다. 높이 솟은 웅장한 바위가 말갈기를 휘날리는 야생마처럼 멀리 지평을 향해 길게 뻗어 있습니다. 대자연이 빚은 장엄한 화폭 앞에서 인간이란 존재가 한없이 작아지고 겸손해집니다. 하루의 삶을 정산하듯 이곳에도 서서히 땅거미가 내립니다. 

리오그란데는 여전히 그렇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아픔이기에 거부할 줄 아는 강, 슬픈 역사를 내려놓을 수 없어 한아름 품을 수밖에 없는 강, 떠나야 하지만 떠날 수 없어 흐르고 또 흐르면서도 망부석으로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는 강, 긴 시간 처절하고도 참혹한 사연들을 숱하게 가슴에 쓸어 담으며 길고도 거친 호흡으로 웅크리며 누워 있는 강, 그것이 리오그란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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