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병주가 만난 사람] ⑯ 이승찬 한려해상국립공원사무소장

▲ 이승찬 한려해상국립공원사무소장. 그는 사천시민들이 국립공원의 생태적·경관적 가치에 두루 관심을 갖기를 바랐다.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국립공원이 그냥 생태보존 기능만 하는 곳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수려한 자연경관과 함께 정서적인 감동과 편안함을 주죠. 그래서 해마다 수천만 명이 국립공원을 찾는 것 아니겠어요?”

#지난해 국립공원 탐방객 4382만 명
지난 18일, 국립공원의 기능과 가치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 국립공원공단 이승찬(56) 한려해상국립공원소장이 되던진 물음이다. ‘잘 보존된 국립공원 덕에 생태탐방객이 늘고, 이로 인해 국립공원 주변지역 사람들도 더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하며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배경설명이 깔렸다.

이는 어쩌면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동안 국내 22개 국립공원의 누적 탐방객은 4382만여 명이다. 전체 국민 가운데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이 1년에 한 번쯤은 국립공원을 찾았단 얘기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돈이 있고 일자리가 생기는 이치를 생각하면, 결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구조에 기대어 살아갈 것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직도 사천에선 국립공원 얘기만 나오면 어린 아이 경기 일으키듯 반응하는 주민들이 있지 않은가. 국가기관이 거짓말을 하는 걸까. 아니면 주민들의 과민반응인가.

뉴스사천이 ‘하병주가 만난 사람’ 연재를 다시 시작하며 이승찬 소장을 만난 건 이 궁금증을 풀어보려는 뜻이었다. 마침 얼마 전 삼천포 앞바다의 섬과 섬을 연결하는 ‘일곱 빛깔 탐방로’ 사업에 관한 보도를 한 뒤라 그 얘기부터 꺼냈다.

“삼천포에서 바라보는 풍경,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굳이 낙조나 노을이 아니어도 고개만 돌리면 절경이에요. 갯벌은 또 어떻고요. 사천만을 한 바퀴 돌아, 서포 비토섬까지 펼쳐진 갯벌은 그 생태적 가치를 두고서라도 정말 귀한 자원입니다. 그런데 정작 가까이 있는 분들은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죠.”

▲ 한려해상국립공원 지도.

#섬과 섬을 잇는 생태탐방로
섬과 섬을 잇는 보행교를 놓아 탐방객 접근을 편하게 하겠다는 사업에 타당성이나 실현가능성이 있겠느냐는 질문에 먼저 돌아온 대답이었다. 그는 이어 말했다.

“가능성이야 얼마든지 있습니다. 다른 국립공원을 보세요. 공원구역 내에서 제한하는 행위가 많지만 최소한의 탐방로는 확보해주거든요. 완전히 보존해야 할 곳이 아니고선. 그래야 국민들도 국립공원을 누릴 수 있고, 그 지역민들로선 제한이 많은 대신 또 다른 살 길이 열리는 거죠.”

사천사람들로선 참으로 반가울 법한 얘기다. 늑도, 마도, 초양도, 저도, 신도. 오랫동안 국립공원구역에 묶여 재산권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섬 주민들로선 더할 나위 없을 테고, 싱싱한 수산물과 사천바다케이블카 등으로 관광객들을 상대하며 살아가는 상인들로서도 ‘그렇게만 되면야’는 반응 아닐까.

그러나 이 소장은 “이 사업이 결코 쉽지는 않다”고 했다. 예산 확보가 뒤따라야 할 일인 탓이다. 그는 “세부적인 구상은 올해 중으로 우리가 연구용역을 맡겨 세우겠지만, SOC(사회기반사업) 사업비는 정치권 등 더 큰일을 하시는 분들이 도움을 주셔야 할 것”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 각산 봉수대에서 바라본 삼천포 앞바다의 여러 섬들. 한려해상국립공원사무소와 사천시가 꾀하는 '일곱 빛깔 탐방로' 사업이 궤도에 오를지 관심이 쏠린다.

#“아마존보다 5배 뛰어난 염습지”
다음 이야기는 자연스레 곤양천 하구, 광포만으로 옮겨갔다. 이달 들어 한려해상국립공원사무소는 지난 8개월간의 연구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광포만의 생태적 가치가 매우 뛰어나다’는 요지의 보도자료를 냈고, 신문과 방송은 이를 일제히 보도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매립을 통한 개발”을 요구했던 광포만 인근 주민들은 이런 보도에 여전히 시큰둥한 편이다.

“이번 발표는 연구조사 결과를 내놓은 겁니다. 우리가 직접 한 것이 아니고, 여러 공인기관에서 한 거죠. 그랬더니 희귀 동‧식물도 많고, 1차 생산자부터 4차 소비자까지 다양해서 생태적 안정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죠. 강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역의 특성이 잘 살아 있다, 이렇게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소장의 설명은 간단명료했다. 불필요한 오해나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광포만 한 자락에 진행되고 있는 대진산업단지 조성사업에 관한 질문에는 “우리가 얘기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한발 물러섰다. 그럼에도 갯벌과 염습지의 가치에 관해선 열변을 토했다.

“염습지의 탄소포집 기능은 아마존 밀림보다 5배 높아요. 지구온난화를 막는 효자죠. 그밖에 갯벌의 자연정화 기능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습니다. 경관으로도 뛰어나죠. 그 가치를 부정할 순 없어요.”

그렇다. 갯벌의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높게 평가되는 경향이다. 새로운 사실이 속속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이 알 수 없는 자연의 비밀은 아직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어쩌면 그 ‘알 수 없음’으로 자연을 좀 더 그대로 두어야 할지 모른다. 20세기 후반부터 온 인류가 떠들어온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 이승찬 한려해상국립공원사무소장이 갯벌과 염습지의 가치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광포만, 국립공원 지정 가능할까
“그럼 광포만도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수 있을까요?”
너무 도발적인 질문이었을까. 이 소장은 즉답을 피했다.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국립공원 지정 요구 목소리가 있지만 해당 지역 주민들 여론과 괴리가 있음을 잘 아는 눈치였다.

다만 삼천포 앞바다의 섬과 섬을 잇는 탐방로와 비슷한 형태의 생태탐방로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가 말한 탐방로는 사천대교를 기점으로 동쪽 거북선마을(주문마을)에서 출발해 용현-사남-축동-곤양-서포를 돌아 자혜마을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해당 구간 중 일부 마을은 통영 만지도와 같은 생태체험마을로 조성할 수도 있겠다고 했다. 만지도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섬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한 해 25만 명이 넘는 탐방객으로 북적이는 곳이다.

그러나 탐방로든 생태체험마을이든 국립공원 차원에서 지원이 가능하려면 국립공원 지정이 먼저다. 따라서 이에 관한 고민은 앞으로 사천시와 지역민들의 것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잠시 갈 길 잃은 대화는 와룡산으로 이어졌다. 진주가 고향인 이 소장은 사천에 근무하기 전부터 와룡산에 여러 번 올랐다고 했다.

“산행을 좋아하는 편인데, 와룡산 같은 곳이 드물어요. 정상에서 360도로 빙 둘러 풍광을 볼 수 있잖아요. 어쩌면 도시 전체를 볼 수 있죠. 가치 면에서는 국립공원 지정도 가능하겠지만, 하다못해 시립이나 도립 공원으로도 지정돼 있지 않다는 데 놀랐습니다.”

#“‘360도 풍광’ 와룡산, 멋지다”
생각해보니 또 고개가 끄덕여진다. 웬만한 지자체들은 도립이니 시‧군립이니 하는 공원으로 지정해놓고 얼마나 알뜰살뜰 가꾸던가. 인근 고성군의 경우 상족암 주변을 군립공원으로, 연화산 일대는 도립공원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심지어 남해군 금산 일대는 아예 국립공원이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이 대체로 바다와 섬 해안가 중심으로 지정돼 있는 것에 비하면 특별한 경우다. 그러니 의지만 갖는다면 와룡산도 국립공원 지정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 역시 행정과 주민들의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통계에 주목해보자. 앞서 소개한 대로 지난 한 해 전국 국립공원을 찾은 탐방객은 4382만여 명이다. 이 가운데 한려해상국립공원을 찾은 이는 644만 명 정도로 전국 22개 국립공원 중 1위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은 통영‧한산지구와 거제‧해금강지구, 전남 여수지구를 다녀간 사람들이다. 사천과 남해 쪽 탐방객은 95만여 명. 그리고 이들 중 대부분도 남해를 다녀간 탐방객이라 하니, 말문이 막힐 정도다. 이에 대한 이 소장의 설명은 이렇다.

“사실 사천엔 탐방시설, 즉 인프라가 전혀 없어요. 시설이 없으니 탐방객을 셀 수 있는 계측기도 없는 형편입니다. 소규모로 유추만 할 뿐이죠.”

답답한 마음이 극에 달했다. 이런 내용을 왜 미리 알아보거나 보도할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자책감도 밀려왔다.

▲ 이승찬 한려해상국립공원사무소장이 ‘국립공원을 활용한 관광인프라 구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천도 ‘관광산업 열쇠’ 쥐게 될까
오늘날 국립공원은 ‘관광산업의 열쇠’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국립공원’이란 이름만으로도 누구에게나 좋은 느낌을 준다. 홍보효과도 뛰어나다. 어느 국립공원이나 경계 바깥으로 식당과 숙박시설이 즐비하다는 점이, 무엇보다 수많은 탐방객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한려해상국립공원은 상대적으로 각종 행위 제한도 덜 받는다. 공원구역이 주로 해상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바다에서 하는 양식이나 어로, 채취 등 어업권에 지장도 별로 없다.

‘국립공원을 활용한 관광인프라 구축’을 이야기한다면 일각에서 ‘너무 나간 것 아니냐’고 비판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우리가 가진 자원을 어떻게 오랫동안, 그리고 가치 있게 쓸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은 분명 필요해 보인다. 이승찬 소장에게 받은 질문을 끝으로 남긴다.

“한려해상국립공원사무소가 사천에 있는 줄 아는 사람이 드물어요. 심지어 사천 사람들도. 그런데 사천엔 이렇다 할 탐방로도 조망시설도 없어요. 관리할 게 없죠. 뭔가 애매~하죠. 이걸 어떻게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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