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핑계. 15×15. 2019.

얼음 사이로 채워지는 우유, 그 속을 파고드는 진한 에스프레소가 마블링처럼 고와 보였다. 더운 계절이 오면 주저 없이 아이스 카페라떼를 주문한다. 투명 컵에 채워지는 커피색을 욕심껏 볼 수 있는 계절이다. 커피를 향이 아니라 색이라 하니 모두들 웃었다. 우유처럼 부드럽지만 커피향이 간섭받지 말아야 하니 쉽지 않을 신공 아니던가! 슬며시 어느 정도의 색감을 가진 카페라떼가 만들어질까 은근 마음이 조급해진다. 긴 빨대를 밀어 넣고 바닥까지 열심히 돌려 댔다. 우유와 에스프레소가 하나가 되었을 때 미소를 지었다. 우유가 더 들어가서도 안 되고 커피가 부족해서도 안 된다. 나에게는 다 똑같은 카페라떼가 아니었다. 미묘한 그 차이에 나는 묘한 만족감이 오고 간다. 그래서 때로는 투샷이 필요할 때가 종종 있다.

카페라테는 알콜이다. 참 이건 비밀인데, 나는 카페라떼를 마시면 정신이 몽롱해지고 온몸에 힘이 빠진다. 당신들이 술을 마셨을 때처럼 어찌 나에게는 카페라떼를 마실 때 오는지 모를 일이다. 대낮에 카페라떼를 들고 있다는 것은 소주병들고 있는 것과 매한가지인 줄을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그래도 아무리 음주측정 해봐라. 수치가 나오는지.......’

카페라떼는 진정제다. 화가 나 있다가도 진정이 되고 우울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해소가 되어 진다. 조울증 환자 같다고 놀렸다. 심각하다가도 별일이 아닌 듯이 풀어진다. 잘 아는 사람들은 나와 사소한 언쟁을 하다가 점점 깊어져 버리면 뜬금없이 카페라떼 한 잔을 스윽 내 앞으로 내밀어 버린다. 커피 한 잔 값으로 해결되는 참 쉬운 여자라고 놀려댔다. 

카페라떼는 떨림이었다. “내가 당신 앞에서 손을 떨며 글씨를 쓰는 것은 새색시처럼 부끄러워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은 글씨퍼포먼스가 있는 행사 때 일이다.  함께 할 작가의 지각으로 나는 불같이 화를 냈고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을 본 내 오랜 친구는 카페라떼 한 잔을 내밀었고 나는 순간 순한 양처럼 변해 버렸다고 한다. 대신 그날 글씨퍼포먼스는 손을 얼마나 떨었던지 생각하기도 싫은 일로 아직까지 남아 있다. 친구는 그곳에서 작가의 손 떨림보다 격앙을 낮추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나 보다. 

카페라떼는 핑계이다. 살아가다 보면 때론 핑곗거리가 필요할 때가 간혹 있다. 핑곗거리가 없을 때 몸이 더 곤해진다. 적당한 핑계는 적당히 휴식으로 올 때가 있었다.  “어쩌지요? 오늘 이럴 줄 모르고 카페라떼를 벌써 몇 잔을 마셔 버렸는걸요.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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