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세상을 바꾼 변호인>

▲ '세상을 바꾼 변호인' 포스터.

현재 북미지역의 젊은이들은 일명 RBG라고 불리는 여성 대법관에 열광하고 있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여성 대법관을 지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성차별에 반대해 일어선 인물로, 구부러진 줄조차 모를 만큼 왜곡된 세상을 올바르게 변화시키겠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사건은 보육비 공제신청을 거부당한 독신 남성의 변호였으며, 성별에 따른 차별은 모두에게 이롭지 않음을 알렸다. 이런 그녀의 삶을 다룬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바로 <세상을 바꾼 변호인>이다.

그런데 정말 일개 변호사가 과연 세상을 바꾸었을까. 때때로 훌륭한 원제를 두고 번역 제목을 경솔하게 짓는 것은 아닌가 싶어 안타까울 때가 있다. <세상을 바꾼 변호인>도 마찬가지여서 ‘On the Basis of Sex’라는 제목 자체가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젠더이슈에 함몰될까 두려워 눈치를 본 것 같은 인상이다. 그렇다고 세상을 바꾸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녀는 정말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힘주어 말하면 <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성차별에 관한 영화도, 한 여성 법조인의 일대기에 집중한 페미니즘 영화도 아니다. 성차별을 극복하고자 신념을 바쳤던 한 인본주의자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편견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여주는, 지극히 인간적이고도 인간적인 휴머니즘 영화다. 이렇게 포괄적으로 이해하면 주제가 더욱 선명해진다.  중요한 것은 여성이건 남성이건, 아니 인간이면 성별에 따라 차별은 받지 않아야 한다. 이 점을 인지하고 나면 마지막 장면에서 세상을 바꾼 변호인이라는 수식보다 더 큰 실존의 무게를 지녔던 한 인간의 삶을 실감하게 된다. 

다만 극영화의 완성도 측면에서는 만족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존재감이 큰 한 개인을 영화화할 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적 요소와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어떻게 결합하느냐하는 영화의 재미로 귀결될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조금 심심하다. 때때로 주제와 동떨어진 서사가 끼어드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굳이 사회변화라는 거창한 주제나 젠더 이슈 혹은 페미니즘 담론과 연계시키기보다는 담백하게 있는 그대로 영화를 즐긴다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차별 없는 세상에 대한 열정과 헌신으로 살았던 한 여성의 생애가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 이것이 이 영화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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