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7.17 수
연재/기획서랍 속 사랑을 세상 밖으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아니더라도, 아이들 위한 나무 그늘 되고파”[서랍 속 사랑을 세상 밖으로] 오영환·정둘아 부부
고해린 인턴기자  |  rin@news40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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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08  03: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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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영환 씨.

[뉴스사천=고해린 인턴기자]

꼬끼오. 닭 우는소리와 함께 우아한 클래식이 양계장을 가득 채웠다. 무슨 풍경인가 싶어 잠시 구경하는 중, 오늘의 주인공인 오영환(54) 씨가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양계장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편한 차림으로 달걀 포장 작업에 한창이었다.

그에게 아내인 정둘아(54) 씨와 처음 만난 순간을 묻자, 드라마나 영화 속 장면에 나올법한 답이 돌아왔다.

“환자와 간호사로. 우리는 병원에서 처음 만났죠.”

1994년 9월의 어느 날, 집에 가던 오 씨는 교통사고로 아내 정 씨가 일하던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그는 한 달 정도 병원에서 지내며 같은 병동에서 일하던 아내를 알게 됐다. 간호사인 그녀가 사람들을 돕는 모습에 호감을 느낀 그. 퇴원을 하면서 이색적인 방법으로 데이트 신청을 했다. 바로 조정래 장편소설 『태백산맥』의 1권을 건넨 것. 장편의 책이다 보니 한 번 만날 때 한 권씩 주면, 적어도 열 번은 만날 것이라는 치밀한 계획(?)에서 실행된 아이디어였다. 퍽 낭만적인 데이트 신청이 그녀의 맘에 들었는지 이후로도 『장길산』, 『녹두장군』 등 다양한 책을 주고받으며 만남이 이어졌다고.

1년여간의 연애 끝에 30살 동갑내기는 결혼식을 올렸다. 그때가 1996년 1월 7일이었다. 그는 결혼식 날 하면, 북적이는 식장에 친가 쪽 가족들이 탄 차가 늦게 도착해 사람들이 모두 기다렸던 상황이 떠오른다고.

부부는 96년에 첫째(예진), 98년에 둘째(세호)를 낳았다. 아내가 아이를 낳으며 힘들어하는 모습에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한 마음이었다는 오 씨. 자식들 이름도 손수 지었다며 그가 웃었다.

“딸 예진이는 슬기롭고 참되게 살아라, 아들 세호는 세상을 넓게 살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죠, 애들 이름에 제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게 다 담겨있죠. 이름 짓는 데 고민 많이 했습니다. 하하.”

책으로 이어진 부부답게, 아이들을 키울 때도 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그는 학교의 정규 수업도 중요하지만 책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단다. 누군가 말한 ‘자기 키만큼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 인상 깊게 남아있다는 그.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어릴 때 집에 소파와 텔레비전이 없었다. 대신 거실 한 쪽 벽면이 전부 책장에 꽂힌 책들로 빽빽했다고.

“애들이 어렸을 때 웃긴 일이 있었어요. 아들이 학교에 서류를 냈는데 가족 이름과 관계를 쓰는 칸에 보통 가족 이름 쓰고 관계는 부(父),모(母) 이렇게 남들 쓰듯이 안 쓰고, ‘가족 이름=누나, 관계=매우 나쁨.’ 이렇게 써서 애들이 싸운 기억이 납니다.”

가족 사이에 있었던 소소한 에피소드에서도 단란한 가족의 화목함이 흘러내렸다.

그는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때에도 자식들이 조금 더 자유롭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대안학교 등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방식을 고민했다.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그에게서 자식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진하게 묻어났다. 부부의 자식농사는 제법 잘 지어졌다. 올해로 24살인 딸은 어엿한 대학생이고, 22살 아들은 대전의 유명 빵집에서 제빵사로 근무하고 있단다.

“딸내미는 성격이 저를 닮았어요. 아들은 엄마를 닮아 성격이 좀 둥글둥글하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아니더라도 자식들이 필요하고 지칠 때 휴식하고 머물다 갈 수 있는 나무 그늘이 됐으면 하죠.”

여하튼 다시 그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그는 2011년 2월부터 양계장을 시작했다. 직장생활과 개인 사업을 거쳐서 귀농을 해야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당시에는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혔다고.

“그때는 애들도 한창 클 때고, 아내는 경제적인 부분이나 안정을 생각해서 제가 직장을 더 다녔으면 했죠. 그래도 저는 나만 잘하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밀어붙였습니다. 처음에는 하루에 13시간씩 일했어요. 지금은 조금 안정을 찾았고, 아내도 좋아하죠.”

그때부터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생활이 햇수로 9년째다. 달걀이 상하면 안 되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365일 부지런히 살았다. 지금은 400가구 중 300가구에 직접 배달을 하고, 800수의 닭들과 동고동락하며 혼자서 전 단계를 책임지는 터라 24시간이 부족하단다. 오 씨가 직접 생산해낸 친환경 달걀은 일반적인 시판 달걀보다 훨씬 씨알이 굵었다. ‘우리 계란이 최고다’라는 그의 자부심이 납득되는 순간이었다.

한편, 내년이 결혼생활 햇수로 25년 차라는 오 씨. 어느 라디오에서 들은 사연을 참고해 아내에게 250만 원의 용돈과 25일의 휴가를 선물하기로 약속했단다. 이 정도면 ‘로맨틱’한 남편이 아닌지.

끝으로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지금은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나중에 아내와 유럽으로 부부동반 여행을 갈 생각입니다. ‘무릎 떨릴 때 놀러 가지 말고, 가슴 떨릴 때 놀러 가라’는 말이 있는데, 저희는 아마 무릎 떨릴 때 놀러 갈 것 같네요.(웃음)”

 

#서랍 속 사랑을 세상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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