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의 배우며 가르치며]

▲ 송창섭 시인.

미국 콜로라도주 로키산맥의 캔비 산은 리오그란데의 발원지입니다. 눈이 녹으면서 계곡을 타고 맑은 물이 되어 흐릅니다. 나무뿌리를 쓰다듬고 돌부리에 부딪치고 낭떠러지를 뛰어내리고 웅덩이를 건너고 그렇게 서에서 동으로 흐르고 또 흐릅니다. 강물은 강의 도움을 받아 흐르지만 마지막엔 결국 강을 떠나야만, 강을 버려야만 바다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들녘을 질러 우거진 숲을 지나 거대한 바위 곁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이 땅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 강을 일러 미국은 리오그란데(Rio Grande)라고 합니다. 이는 스페인어로, 리오는 강(River)을 그란데는 크다(Large, Great)는 의미를 갖습니다. 멕시코에서는 사나운(Wild) 강이라 하여 리오브라보라 부르거나 또는 ‘북쪽에 있는 브라보강’이라 하여 리오브라보델놀테(Río Bravo del Norte)라 부르는데, 길이가 무려 3,051km에 이릅니다. 콜로라도주 남쪽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는 뉴멕시코주를 가로지른 다음 텍사스주를 지나 미국과 멕시코 사이를 따라 흘러 멕시코 만에 도달합니다. 이 강을 경계로 앵글로아메리카와 라틴아메리카로 구분하는 것이지요. 

리오그란데를 가장 가까이 만나기 위해 텍사스주에 있는 빅밴드내셔널파크(Big Bend National Park)를 찾았습니다. 알파인(Alpine)시에서 서쪽으로 들어가거나 동쪽 마라톤(Marathon)시를 거쳐 들어가거나 공원 입구까지는 거리가 대략 100km가 되기에, 숙소를 조금만 멀리 잡아도 가는 데에 최소 2시간 정도 걸립니다. 이른 시간에 가려면 결코 만만하게 볼 거리가 아니지요. 게다가 점입가경인 것은 공원에 들어서면서부터 도처에 흩어져 있는 관광 명소를 가려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길에 쏟아야 합니다. 사막의 난쟁이 선인장들, 기묘한 형상의 바위산, 트레일 코스 등 볼거리가 풍성합니다. 다만 긴 시간을 차를 몰며 공을 들인 것에 비한다면, 그렇게 화려하고 멋있고 경탄할 만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균형 잡은 바위(Balanced Rock), 치소스배이신(Chisos Basin), 치소스산(Chisos Mountain), 산타엘레나협곡(Santa Elena Canyon), 리오그란데, 리오그란데빌리지(Rio Grande Village), 보쿠어스캐년(Boquillas Canyon), 리오그란데샌드바(Rio Grande Sand bar)를 둘러보았습니다. 

잔잔히 흐르는 리오그란데를 가만히 바라봅니다. 강 옆으로 전나무, 가문비나무숲이 우거져 있고, 굽이가 있고 거대한 바위가 있고 물살이 있습니다. 평온한 분위기가 서려 있습니다. 여느 강과 하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강은 쉬이 넘볼 수 없는 높다란 장벽과 같습니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이기 때문입니다. 멕시코인들 그리고 중남미 국가의 사람들 일부가 지금도 미국 땅을 찾아 무모한 탈출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처음 봤을 때의 평온함보다는 오히려 긴장감이 더합니다. 

1970년대 미국 서부 영화가 한창 인기를 끌며 주가를 올릴 때, 영화에 심취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인디언들은 선량한 백인들을 공격하여 무고한 생명을 해치고, 물건을 약탈하고 여자들을 강제로 납치하는 잔인하고 포악한 인물로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미국 기병대는 착하고 좋은 사람들로 철저히 정의의 편이었고, 야생 짐승처럼 이상한 소리를 내며 위협하는 인디언들은 모조리 없애 버려야 할 몹쓸 족속들로 그렸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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