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 전두환 · 김대중을 떼어놓고 한국 현대사를 논하는 것은불가능에 가깝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쿠데타로 집권했고, 김대중은 그 쿠데타가 민주주의를 유린했기 때문에 저항했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자신들이 일으킨 쿠데타에 저항한 김대중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박정희는 김대중을 감옥에 잡아넣거나 집에 감금했으며, 납치까지 저질렀다. 전두환은 그에게 '내란음모'라는 무시무시한 죄목을 뒤집어 씌워 사형을 선고했다.
 
얼마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함으로써 박정희와 김대중은 역사 속 인물이 되었다. 박정희는 마지막까지 김대중에 대한 분노를 거두지 않았고, 전두환은 김대중 전 대통령 때가 전직들이 가장 살기 좋았다는 말 한마디로 자기가 저지른 죄를 씻어버리려고 했다. 그의 서거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는 '김대중'을 다양한 방법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책을 통하여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살았던 삶을 돌아보는 것이다.
 
<만화 박정희> <만화 전두환>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백무현 화백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쓴 책과 그와 함께 했던 정치인, 언론인, 교수들이 쓴 저작물뿐만 아니라 그를 비판했던 사람들이 쓴 저작물까지 다 살펴 3년간 작업 끝에 <만화 김대중 1·2>을 내놓았다. 앞으로 3-5권이 더 나올 것이다.
 
백무현은 먼저 "'빨갱이'도 눈물이 있을까?"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한다. '빨갱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홍글씨'였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명해도, 정당한 방법으로 권력을 잡지 않고, 그 권력을 통해 기득권을 유지해온 사람들은 김대중을 '빨갱이'라고 정죄했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았던 "빨갱이가 문익환 목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 광주 망월동에서, 펑펑 울었다"고 백무현은 회고한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권양숙 여사 손을 잡고 통곡하는 모습은 결코 지울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렇다. 빨갱이도 눈물을 흘렸다. 빨갱이라고 정죄했던 그들이 오히려 피도 눈물도 없었다.
 
김대중은 '사람'이었다. '빨갱이'와 '선생님'이라는 양극단으로 평가받았던 그. 백무현은 김대중이 살아온 정치적 삶을 무조건 따르지 않는 '비판적' 지지자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가장 즐겨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동물의 왕국>이라는 사실과, 귀여운 강아지를 혼낸 것에 단단히 화가 나 국회에서 집으로 득달같이 달려와 아내 이희호 여사에게 따졌다"는 일화를 깨닫고 '인간 김대중'을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동물을 사랑한 김대중이라면 어찌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겠는가. 가난한 자들, 여성들을 사랑했다. 용산철거민참사를 보면서 가슴이 아렸다고 말했다. 그 사랑은 자기를 좋아한 사람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빨갱이'로 매도한 자들까지, 정적까지 용서한 휴머니스트였다고 백무현은 <만화 김대중>에서 그리고 있다.
 
백무현은 말한다. 그의 정적들은 김대중을 '빨갱이'로 정죄하다가 먹히지 않으니 마지막에는 '대통령병 환자'라고 매도했다고. 그러나 민주주의를 유린한 박정희는 18년을 집권했다. 전두환도 민주주의를 유린하면서 죄 없는 광주시민을 무참히 학살했다. 오히려 박정희와 전두환이 더 대통령병 환자였다고 비판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명언을 남기고 흙으로 돌아간 김대중에게 백무현은 "진정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며 "그가 과연 '빨갱이 김대중'인지 '선생님 김대중'인지 이제 역사가 기록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밝히기 위해 그는 <만화 김대중>을 3년 전부터 기획했다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9년 1월 7일 일기에서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고 썼다. 마지막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백무현은 이를 두고 "'행동하는 양심'이 승리한다는 믿음이라"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살았던 시간에는 일제식민지, 한국전쟁, 이승만 정권, 박정희 독재정권과 전두환 독재정권, 그리고 경제 식민지였던 IMF,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다. 여든 살이 넘은 사람들이 다 경험한 시간이었지만 김대중는 달랐다. 특히 박정희 독재정권부터 남북정상회담까지는 중심이었다.
 
<만화 김대중 1>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태어난 하의도의 과거를 먼저 그렸다. 하의도를 먼저 다룬 이유는 하의도가 지닌 역사적인 의미 때문이다. '하의도' 그곳은 조선시대에는 선조 딸 정명공주 시댁인 풍산 홍씨 가문에게, 일제강점기에는 이완용을 등에 업은 홍씨 가문과 일본인들에게, 조국 해방 후에는 미군정에게 착취를 당했고 이에 분개하여 300년 동안이나 농민들이 농지탈환운동을 전개한 곳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마지막 고향 방문이던 2009년 4월 하의도 농민운동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해 "인생을 살아오면서 하의3도 농민의 정신을 가지고 끝까지 굴하지 않고 투쟁해왔다"고 말한 바 있다.
 
1권에서 하의도 농민들 토지반환역사를 길게 다룬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김대중이 '인동초'가 된 이유는 선조들이 300년 동안 자신들 권리를 위해 부당한 권력에 저항했던 삶이 육화되었기 때문이리라.
2권에서는 김대중과 박정희의 만남을 다루었다. 어쩌면 박정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가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고 할 수도 있다. 박정희가 김대중이 주장하는 대로 3선개헌과 유신독재를 하지 않았다면 김대중은 40대에 대통령이 되었겠지만 독재정권에 저항한 상징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정희는 3선개헌과 납치, 유신독재로 독재자와 민주주의를 유린한 상징이 되어버렸다. 김대중은 그에게 저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항하면 박해했다. 박해할수록 김대중은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았다. 이것이 김대중을 김대중답게 했고, 수없이 변절해간 이들과 다른 점이었다.

앞으로 나올 3권은 서울의 봄, 김대중내란음모사건, 전 세계에서 일어났던 구명 운동, 미국 망명, 2.12 총선을 다룬다. 4권은 6월항쟁, 야권분열, 1992년 대선, 정계은퇴, 50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청와대에 입성하기까지를 다룬다. 5권은 IMF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노벨 평화상 수상, 노무현 전 대통령을 해양수산부장관에 임명, 정권 재창출 따위를 다룬다. 

이제 다시 올 수 없는 길로 간 김대중 전 대통령. <만화 김대중 1-5권>은 민주주의와 남북화해, 서민을 위해 평생을 살았던 '행동하는 양심' 김대중을 우리에게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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