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의 배우며 가르치며]

▲ 송창섭 시인.

어느덧 점심 때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꽤 흘렀나 봅니다. 날은 조금 더웠습니다. 주말에 열리는 작은 축제 때문인지 거리는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배도 고프고 다소 지친 심신으로 휴식이 필요했습니다.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는 슬로피조스바(SLOPPY JOE’S BAR)에 가고 싶었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주택 박물관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너무 달랐습니다. 막상 들어가려 하니 식사할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지요. 대낮부터 굉음에 가까운 요란한 연주에 노랫소리가 진동을 했습니다. 국적 불명의 남녀노소가 엉키듯 어울려 술을 들이키며 함성을 지르고 춤을 췄습니다. 그야말로 광란의 한낮이었습니다. 

발길을 돌려 그랜드(Grand)라는 음식점에 들어갔습니다. 손님들은 많았지만 비교적 조용하고 차분했습니다. 키웨스트맥주와 빵, 닭튀김, 감자, 야채를 주문해 먹었습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하지만 음식 값은 다른 지역에 비해 비싼 편이었고, 팁도 더 줘야 했습니다. 약간의 텃세 혹은 바가지요금으로, 유명 관광지라는 티를 내는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요기를 하고는 슬로피조스바 쪽으로 다시 걸어갔습니다. 

바의 주인이었던 슬로피조러셀은 헤밍웨이와 교분을 두텁게 쌓은 친구였습니다. 그가 1933년부터 1937년까지 살았다는, 이른바 원조 슬로피조스바였던 캡틴토니스살롱(CAPT.TONY’S SALOON)에 잠시 들르기 위해서였습니다. 바의 맞은편에 있다고 얘기를 들었는데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길거리에서 장신구를 만들어 파는 한 여성에게 물었습니다. 

“익스큐즈미. 두유노우더캡틴토니스살롱? 댓이즈어라운드히어. 웨얼이즈댓?” 

그녀는 왼손을 들어 방향을 가리키며 친절하게 말했지요. 

“유아고잉라이트앳더인터섹션오버데어. 오케이?” 
“예스, 땡큐.”

인사를 하고는 사람 숲을 헤쳐 얼마 후 살롱을 발견했지요. 조금은 한산한 풍경이었지만 생음악과 노래가 시끄럽게 들리는 건 조스바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헤밍웨이가 즐겼던 감흥을 그대로 맛보려는 사람들의 심리가 반영된 탓도 있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트루먼 대통령의 작은 백악관 박물관, 멜피쉬뮤지엄, ‘MILE 0’(0마일 지점), 바닥에 새긴 숱한 노동자들의 이름 그리고 삶의 애환을 담은 동상, 이런 장면들과 마주하며 만감이 뇌리를 수놓았습니다.    

키웨스트는 스페인어로 카요 웨소(Cayo Hueso)라 합니다. 카요는 섬, 웨소는 뼈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키웨스트는 원래 유골의 섬, 공동묘지의 섬이라는 뜻입니다. 

키웨스트의 바닷가로 갔습니다. 사우스비치와 맬로리광장에서 바라본 노을은 도무지 그 출처를 알 길이 없습니다. 어찌 저토록 신비롭고 수수께끼 같은 색감을 빚어내는지 가슴이 뛰고 숨이 차오릅니다. 무슨 말이든 꺼내려 하다가도 일순간에 입이 굳어 버립니다. 어떻게 하면 원작을 최대한 닮은 묘사를 할 수 있을까, 적절한 어휘를 찾아 헤매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수작을 부려 봐야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표현 장애라 해도 도리가 없겠지요. 넋을 잃은 듯 꼼짝 않고 노을을 한참동안 바라보았습니다. 헤밍웨이가 노골적으로 사랑했다는 그 노을이 오늘따라 터무니없이 짙붉어 마술을 부리는 듯했습니다.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니 덩달아 술맛도 유별납니다. 사람을 간명하게 함몰시키기 위해 노을의 혈血을 추천해도 썩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유골의 섬, 키웨스트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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