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으면 ‘딱’ 하는 소리에 붙었다는 이름 닥나무
접착제 역할 하는 느릅나무와 함께 저도에 울창
‘옛 저도 사람들도 참종이를 직접 만들었을까?’

▲ 딱섬(=저도)이 이름 그대로 닥나무를 많이 품은 것으로 확인됐다. 북서쪽 능선의 닥나무와 느릅나무가 어우러진 군락 모습.

삼천포 앞바다에 밀물과 썰물이 일면 집채만 한 바위도 굴릴 만큼 강하고 빠른 격류를 일으킨다. 창선도와 각산 사이 협곡에 아홉의 섬이 있고 그 끝단에 저도 섬이 있다. 해질 녘 아름다운 노을의 배경이 되는 섬, 부챗살 원시 정치망 죽방렴을 징검다리 삼아 섬으로 이어진 저도의 보물이야기를 풀어본다.
이 격랑의 해협에 자리한 아홉의 섬 가운데 다섯 곳에 사람이 산다. 섬에 사람이 살 수 있다는 것은 물이 있었다는 말이고 생업은 말 안 해도 어업이겠다. 물고기 잡으며 살아온 이들 섬을 깨우고 출렁다리로 엮어 둘레길로 조성한다고 한다. 해서 섬에 전하는 전설을 풀어 스토리를 입히자는 것이 기본 의도이다.

저도는 실안 산분령마을에서 800미터 떨어져 있다. 저도의 ‘저’자는 한자로 닥나무 저(楮)이다. 전해오는 말로 이 섬에 닥나무가 많아 저도가 되었단다. 한때 50여 가구가 어업에 종사하며 살았던 저도는 지금은 20여 가구 40여 명이 모여 산다.

저도의 별칭이 딱섬이다. 저나무는 한지를 만드는 식물로 꺾으면 딱하는 소리가 난다고 딱나무인데 저도도 딱섬으로 불리었다. 19세기 한지생산은 국가산업이었고 한지 산업이 국가장려 산업인 탓에 저골, 저실, 저도의 이름이 전국 곳곳에 남아있다. 그렇다면 우리 지역 저도에도 닥나무가 자생하지 않을까하는 단순한 물음에 끌려 들어왔다.

이름으로 칭해질 만큼의 식물, 그 닥나무를 발견하고 오늘(=6월 8일)은 관련 식물분야 전문가 박사님 네 분을 모시고 다시 섬으로 발길을 들였다. 닥나무의 생태환경과 지역자산의 가능성 그리고 유전적 기질을 살피기 위해서다.

▲ 저도에 자생하는 닥나무.

닥나무는 한지, 즉 참종이를 만드는 재료나무다. 중국은 선지, 일본은 와지, 우리나라는 한지라고 부른다. 1년생 가지를 겨울부터 이른 봄에 잘라 그 껍질을 말렸다가 물에 불린다.  수피의 껍질을 벗겨 백피를 만들고 그 백피를 잿물에 삶아 수피섬유를 얻는다. 이때 황촉규 뿌리에서 추출한 응집제를 섞어 걸쭉하게 분해한 다음, 지통에 풀어 대발로 떠 종이를 만든다. 말로서는 두 문장이지만 그 작업은 지루하고도 고달파 아흔아홉 번의 손이 들어 오죽하면 닥나무로 종이를 만드는 과정이 사람을 만드는 과정이라 해서 나무木에 놈者를 써서 저(楮)이겠는가.

닥나무는 섬의 서편과 북단의 능선을 따라 넓게 분포하고 있었다. 뽕나무를 닮은 닥나무 잎도 그렇고 그 꽃모양도 틀림없는 닥나무였다. 그 닥나무가 군락에 함께 자라고 있는 느릅나무의 분포도 예사로 볼 내용이 아니란다. 함께 간 한지연구소 조현진 박사는, 저도는“황촉규를 대체할 느릅나무를 심어 여기서 유근피를 얻고 종이를 만들었다면 푸른빛이 도는 한지를 만들었겠다”며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또한 “이곳 닥나무는 섬유질이 강하고 길어 그 용도에 대해서도 연구해 볼 가치가 높다”며 군락지 보존과 전통 한지의 제작기법의 상품화에 지자체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닥나무꽃.

1970년대 주택개량으로 쇠퇴한 참종이, 다시 말해 한지(韓紙)는 한옥의 문풍지, 벽지, 장판지, 거기다 인쇄용 종이까지 다방면에서 쓰였기에 닥종이는 바로 그자체로 돈이었다. 지금은 이탈리아에서 유물복원 종이의 최고로 한지를 손꼽고 있고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발견에서 보이는 것처럼 천년이 가도 썩지 않는 종이로서의 과학성이 세계를 놀라게 한다.

역사 속에서 만나는 늑도 무역항의 연관성과 고려조 초조대장경 판본의 종이로서의 고려지 등과 연계해 지역의 킬러콘텐츠로서도 키워본다면 섬둘레길 조성과 함께 ‘체험과 머물러 가는 관광’의 효자가 될 수도 있겠다. ‘저도의 닥나무로 만든 한지로 무얼 했을까’하는 질문의 끝에 달릴 의문의 결실은 결국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세대가 찾아야할 가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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