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나무.

밤나무 꽃이 한창이라고 하면 “밤나무도 꽃이 있어? 물론 열매가 맺히고 밤나무도 나무이니 꽃은 피겠지”하고 무심히 말한다. 그렇게 말할 만도 하다. ‘밤’ 하면 떠오르는 게 가을에 즐겨먹는 그 밤이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산자락 곳곳에 심어져 밤꽃을 흩뿌리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달리는 차 창밖으로 살짝 얼굴만 돌려도 새파란 잎 위를 덮고 있는 긴 꼬리 모양의 밤나무 수꽃이 눈길을 끈다. 그동안 형형색색의 꽃을 여럿 보아온 탓에 색감과 모양으로 비교하자면 사실 밤나무 꽃이야 특별할 게 없다. 다만 무리 지어 핀 밤나무 수꽃은 폭포처럼 층층이 쏟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폭죽이 위로 터졌다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수북하게 쏟아지는 수꽃과 달리 암꽃은 수꽃 바로 밑에 세 개씩 달려 부끄러운 듯 숨어있다. 저 꽃들이 피고 져 가을에 밤송이로 탄생하는구나 싶어 신기하다. 

밤나무는 참나뭇과에 속하는 낙엽 지는 나무이다. 잘 자라면 15미터까지 큰다. 아까시나무의 꽃이 진 후,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초여름 산을 특별하게 해주는 것이 밤꽃이다. 밤꽃의 향기도 독특하다. 어긋나게 달리는 잎은 넓은 버들잎 모양이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9~10월이면 날카로운 가시로 덮인 밤송이가 매달린다. 누구에게나 밤나무에 얽힌 추억 한 조각은 있을 것이다. 가을 햇살을 가득 받으며 가시에 찔릴세라 조심하면서 밤톨을 꺼내고 떫은 껍질을 벗겨 생밤을 건네주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린 시절 소풍 가방에 빠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 밤이었고, 추운 겨울 구운 밤은 그 어떤 간식보다도 맛있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신호를 기다리던 중 약밤을 파는 사람에게 얼떨결에 시식용 약밤을 하나 얻어먹었다.

그렇게 밤나무는 우리의 일상 가까이에 들어와 있다. 다양한 방식의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 외에도 대표적으로 밤은 제상에 반드시 올리는 과일이다. ‘조율이시(棗栗梨柿)’의 율(栗)이 밤나무이다. 식물들은 종자에서 싹을 틔워 낼 때 종자의 껍질을 밀고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밤나무는 종자에서 싹이 나와 꽤 자랄 때까지 밤껍질이 어린나무 뿌리에 계속 달라붙어 있다고 한다. 하여 밤나무를 근본(선조)를 잊지 않는 나무로 여겨 제상에 올리고 있다. 밤나무는 꽃에서 따는 꿀로도 우리에게 큰 이익을 준다. 아까시나무의 꿀을 모두 따고 나면 양봉업자들은 다시 밤꽃을 따라 움직인다. 밤나무는 사당이나 묘를 세우는 위폐를 만드는 데 쓰인다. 또한 재질이 단단하고 탄성이 커서 세계 각국의 철도 침목은 거의 밤나무로 만든다. 밤은 자식과 부귀를 상징하여 혼례에도 등장한다. 전통혼례의 대례청에 놓인 밤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혼례식이 끝나면 동네 여인들은 재빨리 밤을 집어 가곤 한다. 폐백을 할 때 자식을 많이 낳으라고 어른들이 밤과 대추를 던져 준다. 

재배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과수의 하나인 밤나무는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을까? 얼마 전 발굴된 삼한 시대의 유물 가운데 칠기 속에서 밤알 몇 개가 발견되었으니 아주 오랜 옛날임에는 분명하다. 경주 천마총 내관의 목책도 밤나무로 되어있고, 각종 농기구 등에도 이용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특히 우리나라의 밤나무는 크기가 무척 컸다고 한다. “벼농사는 풍년이고 밤은 주먹보다도 크다”는 기록이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밤나무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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