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아할 호(好). 15×15. 2019.

차 안에서 가게 입구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주인 여자가 문 열기만을 기다렸다가 쏜살같이 들어가고야 말 것이다. 문 열고 얼마 안 된 이른 시간에 갔지만 두 시간가량을 기다려 겨우 머리를 하고 나온 적이 있어 오늘은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참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엉망으로 뒤엉켜져 있는 머릿속을 기분으로라도 위로해 주고 싶어졌다. 미용실 싸인볼이 돌자마자 달려가니, 할머니 한 분은 30분 전부터 문 앞에서 버티고 있었다.

들어서고 십분 정도 지났을까. 미장원 안 소파는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버렸다. 다들 부스스한 모습을 하고 경주 레이스에서 한발 늦었다는 아쉬운 눈빛으로 들어선다. 오늘 만큼은 내가 적당한 승자였다. 길고양이 한 마리 바깥입구에서 사람 좋은 주인 여자의 바쁜 속도 모르고 먹이 주기를 기다린다. 아침 공기 좋은 유월의 동네 미용실에서 선택의 여지없이 같은 티비 화면을 모두들 바라보고 있었다. 

“난 요즘 티비 보는 게 너무 싫어. 온통 쳐 묵는 거 밖에 없고... 저리 사람들 떼로 나와서 지네끼리 집구석 일들 떠들어 대는 것도 보기 싫고... 시끄러워... 농담 따먹기 함서 돈 벌어 가는 것도 기분 나쁘고... 맨 날 사건사고 일어나는 뉴스도 그렇고... 지네끼리 싸워 대는 것도 보기 싫어.”

“그렇다고 자네는 티비 전혀 안 보시나?”

“아니, 보는 거 있지... 난 홈쇼핑만 봐. 그것만 틀어... 봐봐... 온통 물건 내놓고 좋다는 얘기만 하잖아. 좋은 소리만 들으니 기분이 좋아져... 난 티비에서 가장 긍정적인 프로가 홈쇼핑이라고 보지. 뭐든 싫은 게 없잖아... 다 좋대... 다 좋다는 소리뿐이야.”

아주머니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 버렸다. 머리를 해서 기분을 바꿔 보려고 갔던 것이 어느 아주머니의 수다를 듣는 순간, 머리를 정리한 가벼움보다 더 큰 가벼움이 와 버렸다. 그러고 보니 나는 홈쇼핑에서 채널을 멈추어 본 적이 없었다. 

오늘도 여전히 자정이 지나간다.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모내기를 끝낸 논에선 개구리 소리가 어지러운 내 마음만큼이나 시끄럽다. 식구들은 평화롭게 잠들어 있다. 거실 소파에 몸을 누이고 티비 전원 버튼을 눌렀다. 홈쇼핑 채널에서 멈추니 안마의자와 속옷 그리고 여행상품들이 최고라고 자랑을 한다. 매진 임박, 물량 비상, 다음 방송 미정... 신용카드를 꺼내 든다. 나는 핸드폰 너머로 시키는 대로 꾹꾹 누르고 있었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