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속 사랑을 세상 밖으로] 조평자‧김정실 부부

▲ 조평자, 김정실 씨 부부

딸랑.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방이 액자로 가득한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추억의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가족 이야기를 들려줄 네 번째 주인공은 조평자(56)‧김정실(67) 씨 부부다. 조 씨 부부는 동서금동에 있는 청탑 사진관에서 36년째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남편을 스무 살에 처음 만났죠. 저는 그때 전자제품 가게에서 경리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한쪽 구석에 비디오테이프를 대여해 주는 코너가 있었어요. 남편은 매일 비디오테이프를 빌리러 오는 노총각이었죠.”

숫기 없는 남편은 40번이 넘는 선을 보다 지쳐, 가족들에게 좋아하는 아가씨가 있다고 털어놨다. 그때부터 시댁 식구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 조 씨의 집안에 ‘딸을 주십사’하고 결혼을 추진했다고. 시동생과 시숙이 서울에서 매주 내려오는 정성에 그녀의 집안도 두 손을 들었다. 꽃다운 나이에 11살 차이나는 남편을 얻게 됐지만, 20살 크리스마스에 남편이 하던 사진관에서 첫 데이트를 했다는 얘기로 미뤄보아 한 쪽만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닌 듯하다. 

▲ 조평자 씨

여하튼 다음 해인 1984년 4월, 조 씨는 사진관으로 시집을 왔다. 지금에야 카메라 말고 다른 걸 드는 게 어색한 그녀지만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경리 일을 하던 그녀라 숫자, 암산, 기억에 능했지만 사진에는 문외한이었다. 

“85년에 처음으로 사진을 만졌어요. 그때는 암실이 있는 흑백사진 시대였는데 남편이 외출한 사이, 장애인 증명에 쓰일 사진을 찍으러 급하게 온 손님이 있었어요. 그때 찍은 게 제 첫 사진인데,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정식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어깨 너머로 독학한 거라 ‘어깨 너머 사진사’라며 조 씨는 웃었다. 인터뷰 중에도 사람들이 수시로 들어와 사진을 찍고 갔다. 조 씨는 능숙하게 사진을 찍고 손님들을 맞았다. 연평균 증명사진을 찍는 사람만 2500명 정도 된단다. 이렇게 지역에서 사랑받는 비결은 뭘까?

“아무래도 한 군데에서 오래 해서 그렇지요. 보통 가족사진은 가족들이 모일 때 많이 찍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설날, 추석 당일에 안 쉬고 문을 엽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에도 원래 예정돼 있던 아기 돌 사진을 찍었다는 그녀. 프로답게 티 내지 않고 임했지만, 4번째 손님 이후에는 저절로 눈물이 쏟아져 더 이상 손님을 받지 못했다고. 그녀는 사진관을 운영한 날 중에서 ‘삶과 죽음’이 교차한 그날이 가장 인상 깊은 날이었다고 했다. 
이렇게 부부는 카메라에 이웃들의 삶과 인생을 담으며 열심히 살아왔다. 

“지금 보면 나이차가 좀 나서 그런가, 남편이 나를 예쁘다 예쁘다 한 것 같아요. 남편에게는 너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녀는 오랜 부부생활을 하며 남편이 자신의 자유로운 영혼을 이해해주고,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막은 적이 별로 없다고 했다. 역시 가정의 평화는 이해와 신뢰에서 나오는 것일까. 

▲ 조평자 씨의 시 '사진관 그 여자'

자식들도 이미 다 커서 딸은 첼로 연주가, 아들은 타투이스트로 각자의 삶을 잘 꾸려나가고 있다. 조 씨도 사진에 이어 시를 쓰며 학창시절부터 그려왔던 또 하나의 꿈을 이뤘다. 올봄에 시 공모전에서 등단해 시인이 됐단다. 이 정도면 이 집안 가족들 사이에 ‘예술의 피’가 흐른다고 보는 게 맞겠다. 
끝으로 긴 세월 동안 사진과 함께한 조 씨에게 사진이란 뭘까 들어봤다. 

“나에게 사진은 청춘을 다 바친 것이죠. 결혼을 하고 사진관에서 살아가면서 느꼈습니다. 사진은 따뜻하고 배부른 거예요.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결혼을 하면서 안정을 찾은 것 같아요.”

딸랑. 다시 문이 열리고 카메라를 든 조 씨가 미소로 손님을 맞는다. 여러 손님들의 사진을 보며 간접적으로 온 세상을 여행할 수 있어서 좋다는 그녀. 지금 사진관 안으로 그녀를 위한 또 다른 세계가 걸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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