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사회주의자라는 말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의미가 되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양자를 동의어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 혹은 민주적사회주의 등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적 경제 질서를 인정하는 토대 위에 사회복지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규제・조정 역할을 중요시하는 정치이념이다. 불공정함을 시정하고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국가의 시장에 대한 개입에 대해, 유럽식의 사회(민주) 주의로 가려는 것이냐는 지적은 옳으나, 빨갱이(공산주의자)로 몰아붙이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공산주의 원조국가 격인 러시아와 중국도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마당에 공산주의자라는 비난은 시대 상황과 어울리지도 않는다. 

우리 헌법은 사회국가원리를 도입하고 있다. 즉 전문에서 “안으로 국민 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라고 하고 있고, 제10조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제31조부터 제36조까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사회보장, 사회복지증진, 재해예방을 위한 국가의 노력 의무, 생활 무능력자에 대한 국가의 보호, 근로자의 고용증진과 적정임금 보장 및 최저임금제 실시, 여성・연소 근로자에 대한 보호, 근로권, 교육권, 보건에 대한 국가적 보호 등 일련의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다. 또한 제23조는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를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할 것과 공용부담을 규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천연자원의 국유화(제120조), 농지소작제 금지(제121조), 농지・산지의 이용제한(제122조), 민간기업의 국공유화 가능성(제126조), 시장지배와 경제력남용의 금지(제119조), 소비자보호(제124조) 등도 규정하고 있다. 최근의 헌법 개정 논의에서 실질적 평등과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국가의 역할이 보다 강조되는 방향의 개정안을 두고 ‘사회주의 헌법’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면, 1987년에 개정된 헌법의 위 규정만으로도 충분히 경악스러운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라도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집단은 “그렇다, 우리는 북・서유럽의 복지국가를 지향하고, 그 이념은 사회민주주의다”라고 말하고, 보수를 표방하는 정치집단은 “아니다. 우리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우리의 미래다”라고 말하라. 그리고서 국민의 선택을 받아라. 물론 양 정치이념의 중간에, 또 그 각 그 좌우에도 다양한 이념은 있지만.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