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기생충>

▲ '기생충' 포스터.

봉준호의 영화는 늘 그렇듯 선명한 메시지를 에둘러 가지 않고 정직하게 전달한다. 무엇보다 그의 영화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인데, 이 험난하고 허무하며 희망 없는 세계를 바라보고 감싸 안는 그의 시선은 날카롭지만 희망적이다. 이것이 그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얼마 전 ‘황금종려상’이라는 낭보와 더불어 그는 이제 명실상부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거장이란 영화 권력도 아니며 모모 상 수상이라는 부수적인 전리품도 아니며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예술혼을 태우는 사람을 일컫는 말도 아니다. 사회를 통찰하는 안목을 가진 이에게 주어져야 할 칭호다. 그런 관점에서 봉준호는 벌써 거장이지만 사실 본인은 그런 칭호에 관심이 없을 듯하다. 지금껏 봐온 그의 영화가 그렇다.

<기생충>은 재미있고 유머러스하며 칼날 같은 풍자와 위트가 오감을 자극한다. 보편타당한 이야기를 하는데 지루하지 않고 짜릿하다. 이는 영화 속 치밀하게 계획된 디테일에 힘입은 바 큰데, 과연 ‘봉테일’이란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이미지, 두 개의 극명히 갈리는 공간 속에서 치고 박고, 웃기다 울리며 뼈아픈 서사를 직조해 낸다. 송강호 가족의 집과 이선균 가족의 집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차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시각적 공간이 심리적 공간과 완벽하게 일치하면서 ‘햇빛’ ‘지하철’이란 평범한 단어가 이토록 계급적일 수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봉준호가 공간을 창출하고 나누는 방식은 영화적으로 영리하고 미학적으로는 아름답다. 언론시사회에서 던진 “사회 양극화라는 단어를 굳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사실적으로 담고 싶었다”던 화두는 충분히 성공적이다. 이 사실적인 영화 속 세계 안에서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는 한 끗 차이다. 스크린으로 결코 표현해낼 수 없는 가난의 냄새를 끝내 관객에게 전달함으로써 공감을 이끌어 낸다. 

시각적으로 잘 구현된 계급 차, 사회적 모순을 드러내는 메시지 그리고 신자본주의 질서 안에서 그 한 끗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것이 ‘돈’ 그 자체라는 강변을 외면할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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