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神用). 15×15. 2019.

人(인) 解讀有字書(해독유자서) 不解讀無字書(불해독무자서) 知彈有絃琴(지탄유현금) 不知彈無絃琴(부지탄무현금) 以跡用(이적용) 不以神用(불이신용) 何以得琴書之趣(하이득금서지취) 사람들은 글자 있는 책은 읽지만 글자 없는 책은 읽지 못하고, 줄 있는 거문고는 타지만 줄 없는 거문고는 타지 못한다. 형체 있는 것은 쓸 줄 알지만 정신을 쓸 줄 모르니, 어찌 거문고와 책의 참맛을 알겠는가.

때때로 정신머리 때문에 곤혹을 치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려 때를 놓치지 않으려는 강박관념이 습관처럼 나를 괴롭히곤 했다. 정해진 틀이나 약속을 무슨 제례의식처럼 숭고하게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이유가 다 이놈의 정신머리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신머리를 바로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놈의 정신머리!” “눈치 없는 게 사람이냐?” “꼭 얘기를 해야 알아먹어?” “척하면 착하고 알아야지!” 그래서 채근담의 신용이 은행 대출 때나 쓰는 그 신용이 아님을 알아 차려 버렸다. 정신을 쓰다.... 정신을 사용하다.... 간혹 사람들에게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냐고 반문을 한다. 옳지 않은 일을 보아도 눈을 감아야 내 일신이 편할 때가 있고, 내가 눈을 감아 주어야 주변의 일신이 편할 때가 있었다. 나를 아끼는 사람들은 내 일신을 들먹이며 이렇게 내 정신까지도 관장하고 싶어 했다.  

얼마 전, 정신을 잘 다루지 못하여 누군가와 소원해져 버린 일이 있었다. 정신을 사용하기에 신중했어야 했다. 정신의 속도를 계산하고 강도도 계산했어야만 했다. 내 머릿속에 깊숙이 박혀있는 정신이란 녀석 때문에, 내 몸 안에 혼자 박자 잘 맞추어 호흡하던 심장이 찌릿하고 저려와 버렸다. 정신머리를 잘 운용하지 못하였더니 엉뚱하게도 심장이 곧잘 상처를 받아 버린다. 정신을 제멋대로 부렸다가 내 몸의 온전한 감각들이 초가삼간 다 불태워 버리듯 크게 한번 휘몰아쳐 버린다. 그러고 보니 나라는 사람의 정신은 심장과 가장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었다. 정신머리가 한 짓인데 심장이 그 뒷수습을 감당하고 있었다.  

꽃이 필 때나 계절이 바뀔 때나 오늘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나 바다가 너무 눈부시도록 파랄 때나 그리고 칠흑 같은 어두운 곳에 혼자 놓여 질 때나 요즘 같은 세상이나.... 이때만큼은 정신을 쓸 줄 모르는 것이 오히려 약이 될 수도 있겠다고 혼자서 중얼중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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