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사천] <재인, 재욱, 재훈>

▲ 재인, 재욱, 재훈 / 정세랑 / 은행나무 / 2014

세상에는 화목하지 않은 가족이나 친절하지 않은 이웃도 많고, 폭력적이고 혐오스러운 사건들도 적지 않게 일어난다. 각종 매스컴에서 보도되는 상상 밖의 세상사들을 대하다 보면, 아직 미처 만나보지 못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서부터 가까운 이웃과 지인들까지도 왠지 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막연한 불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세상에서 죽을 때까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새로운 사람을 믿고 사귀어도 될까?’ 같은 의심이 피어오르고 세상이 서먹하게 다가온다면, 요긴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있다. 

어느 날 우연히 이상하고 시시한 초능력을 갖게 된 삼남매의 모험을 그린 정세랑 작가의 「재인, 재욱, 재훈」. 엉뚱한 상상을 명랑하고 유쾌한 서사에 담아 부담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해 주는 건강한 시선의 중편소설은 마치 재치 있고 입담 좋은 친구가 들려주는 한 판 에피소드 같다.

연구소에서 일하는 첫째 재인은 초강력 손톱을 가지게 되고, 아랍 사막의 플랜트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둘째 재욱은 위험을 감지만 하는 능력, 그리고 미국 조지아의 염소 농장에 교환학생으로 간 막내 재훈은 엘리베이터를 텔레파시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누군가를 구해야 한다. 

판타지임에도 불구하고 삼남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누군가를 구하는 모습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 어떤 캐릭터도 단단한 서사에 평범하게 녹여냄으로써 독자로부터 신뢰감을 얻어내는 정세랑 작가다운 방식이다. ‘아무것도 아닌 우연, 아주 조그만 초능력, 평범하고 작은 친절, 자주 마주치는 다정함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의도가 탁월한 비유와 사랑스러운 캐릭터에 담겨 매력적으로 전해진다.

빠른 스토리 전개에 책장을 넘기다가 종종 만나게 되는 재기발랄한 문장에 잠시 웃고, 또 읽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막연한 불신이 휘발된 자리에 다정한 마음을 가득 채운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세상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고 싶은 마음 대신, 나도 누군가를 구조해야겠다는 마음이 미미하게 움트는 행복도 덤으로 얻게 될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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