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삼조 시인.

1921년에 나서 1984년까지 산 김종삼이란 시인이 있다. 황해도 사람이고 음악과 술을 좋아했고 대체로 가난한 삶을 산 것 같다. 시가 담백하다는 평을 받는 것 같은데 평소에 ‘나의 직장은 시’라는 말을 했던 만큼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가 많다. 그의 시 중 ‘掌篇(장편) 2’라는 시는 매우 감동적이다. 掌篇(장편)이란 손바닥에 들어갈 만큼 짧은 소설이라는 뜻의 콩트를 가리키는데 과연 이 시 속에는 짤막한 이야기가 있다. 짧은 시이니 전문(全文)을 소개해 본다.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십전 균일상床 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십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거지 소녀가 거지장님 아버지의 생일을 맞아 돈 이십 전을 마련하여 십 전짜리 밥집에 밥 먹으러 온 것이 이야기의 전부이다. 그러나 이 짧은 이야기 속에는 숨은 수많은 이야기가 들었다. 우선 이 거지 소녀가 돈 이십 전을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구걸을 했어야 했을까 하는 일에서부터 그 효심을 떠올려 보아야 할 듯하다. 그동안 그들은 무엇을 먹고 입고 어떻게 잠자리를 가졌을까. 이 소녀가 어버이의 생일 선물로 준비한 것은 구걸한 밥이 아닌 정당한 돈을 주고 사 먹는 밥이었다. 이 소녀는 당당한 삶의 가치를 알고 있고 어버이의 생일날 하루만은 어버이에게 이 당당한 삶을 선물하고 싶었던 것이겠다. 

시인은 긴 이야기의 짧은 장면만을 제시할 뿐 일체의 논평은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여백이 있고 담백하다는 평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이 시를 통해 시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모르긴 해도 아마 구걸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른바 취약계층으로 살아가는 사람일지라도 그들도 당당한 사회의 한 일원임을 모든 사람들이 인식해야 하며 그들도 마땅히 누려야 할 사람다운 삶을 누리도록 해야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세상이 바로 더불어 사는 세상이 아닐까.

사족(蛇足)을 달자면, 모든 사람이 모두 똑같이 누렸으면 좋겠지만 그런 사회는 아예 존재하지 않을 듯하다. 게다가 모든 것이 획일화되는 세상은 결코 좋은 세상이 아님에 틀림 없을 것이다. 다양성과 어느 정도의 격차는 서로 존중하되 모든 사람이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존엄과 권리 또한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는 세상은 되어야겠다. 그런 사회를 위해 ‘掌篇(장편) 2’와 같은 시가 우리 곁에 왔다고 생각해 본다.

이런 생각은 많은 시들에서 발견된다. 가까이 우리 고장 출신 박재삼 시인의 시에도 그런 생각이 도처에 있다. 그분의 시 ‘섬을 보는 자리’의 마지막 연은 다음과 같다. “바라건대 하느님이여/ 우리들의 나날은/ 늘 이와 같은/ 공일날로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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