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習(버릇). 15×20. 2019.

아침은 여전히 분주했다. 밤새 온 메시지를 확인할 겸 먼저 차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출근시간을 아들의 등교와 맞춘 지 12년째이다. 그래서 유일하게 둘만의 등굣길은 각자가 보낸 어제의 뉴스거리를 주저리 늘어놓는다.

요즘 동네 입구는 공사가 한창중이다. 겨우 차 두 대 지나가는 마을 도로가 속을 드러내며 파헤쳐졌다. 돌아 나가거나 아침 운동하는 사람들이 다니는 샛길을 조심스럽게 지나가야 한다. 제법 며칠을 그렇게 다닌 듯하다. 어느 날 길을 막던 공사 표지판이 사라지고 임시로 다닐 수 있게 바닥에는 두꺼운 포(布)가 덮여져 있었다. 포장이 아직 되지 않아 울퉁불퉁 영 다니기는 사나웠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샛길을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생각 없이 핸들이 공사가 끝이 나지 않은 그 길로 들어서 버린다. 

“에잇, 내가 왜 이 길로 들어와 버렸지! 김유신의 말처럼 엄마가 딱 그 꼴이네. 다니던 습관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섭다. 정신 똑바로 차렸는데, 순간 이 길로 또 들어서고 있다. 나 원 참”

“김유신의 말? 엄마, 초등학교 때 그 위인전 읽고 하고 싶었던 얘기였는데요. 김유신의 말이 습관처럼 간 그 행위보다 술 취해 말의 목을 자른 김유신의 문제를 짚어봐야 한다고 생각 했어요. 말이 주인의 제재 없음 익숙한 길인 기생집으로 가는 건 당연한 일인데, 참 영민한 말이죠. 취기로 졸다가 상황에 당혹해 말의 목을 자른다는 것이 잘못이잖아요. 저는 어릴 적에 그 위인전이 싫었어요. 김유신 자신의 굳은 의지나 신념을 아이들에게 심어 주려고 아주 잔인한 짓을 해도 우리는 감동해야 했고, 그것이 용납 되어졌어요.”

“그러긴 한데, 벽(癖)이 주는 습관 때문에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 게 아닐까?”

“그래요. 그 습(習)은 김유신의 습(習)이잖아요. 말 등에 타 돌아올 때 고삐를 한번만 잡아 당겼어도 말은 방향을 틀었을걸요. 졸았다지만 결론적으로 저는 말의 습이 아니라 김유신의 습이라는 생각이 더 들었어요.”

“술이 떡이 되었잖아. 깜박 졸아 버린 사이....”

“그런 사람이 그런 엄청난 명언을 남기며 말의 목을 자르나요? 말 등에서 졸아버린 자신을 탓해야지 정당한 습(習)대로 움직인 말을요? 그렇다면 졸다가 고삐를 틀지 못한 자기의 목을 쳐야지, 말에게 책임을 전가 시키는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을 그때 했었어요.”

“...................야, 네가 술맛을 알아?”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