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의 배우며 가르치며]

▲ 송창섭 시인.

가는 세월을 뻔히 보면서도 감당하기 힘든 게 세월이지요. 오는 놈을 무슨 수로 막으며 가는 녀석을 무슨 방법으로 붙잡겠습니까. 가고 오는 데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흘러가는 시간,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 어떤 의미를 두고 소일하느냐 하는 문제가 개인의 몫으로 남겠지요.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5주기 되는 날입니다. 소중한 목숨들이 먼 길을 떠난 지 그새 다섯 번의 가을, 다섯 번의 봄이 스쳐 갔습니다. 4월, 뭇사람들의 눈길과 마음을 한껏 사로잡았던 벚꽃잎도 수 천, 수 만 장이 피고 졌습니다. 어떤 이는 그쯤 하면 됐다, 이제 그만 하자, 라고 내뱉듯 무심히 말합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떨어진 심정을 겪어 보지 않고 어찌 그 속내를 다 헤아리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세월이 약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차츰 해결이 될 것이라 위로와 격려의 말씀들 하시지요. 어깨를 토닥거리고 등을 어루만집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하지만 잊는 것이 어디 그리 쉽던가요. 사소한 일이나 물건조차도 기억에서 지우려면 무척이나 힘이 듭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하여 잊어버릴 수 있겠던가요. 그리고 잊는다는 건 무얼 뜻하며, 어떻게 살라는 건지요. 늙고 병들어 뇌세포가 망가지고 마침내 인지 능력이 떨어진다 해도, 피를 나누고 정을 나눈 부모형제 이웃들은 아무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아무도 잊지 못할 겁니다. 

침몰 원인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한다 한들, 관련 법령을 개정한다 한들 무너진 가슴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되풀이해 떠드는 ‘사고 재발 방지’ 운운은 공허한 메아리로 흩어져서 신뢰성을 상실한 지 오래입니다. 너나 할 거 없이 생명을 존중하는 공동체 의식을 갖지 않는 이상, 또 다른 참사는 늘 잠재적 발생 요인을 가진 시한폭탄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내 일, 네 일 없이 모두가 ‘내 일’로 여겨야 할 주요한 사안인 것이지요. 

세월이 가면, 잊을 수 있을까요. 최호섭의 노래를 감상하고, 박인환의 시를 음미합니다. 아픔이 사라지고 그리움이 녹아 없어질까요. 상처가 흔적 없이 아물까요. 맑고 푸르기만 한 하늘이 느닷없이 밉고 보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이름마저 세월호라 지난 세월이 더욱 원망스럽습니다. 귀한 생명들이, 눈앞을 어른거리는 아이들이 지금이라도 못 다 이룬 꿈을 펼치고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만 있다면, 단 한번만이라도 보듬어 안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월호 사건으로 300명이 넘는 희생자의 영혼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면서, 부족하지만 단원고 ‘2학년 10반 김민정’ 학생을 기억하며 쓴 시를 올립니다. 

「너를 잊지 않으리」, 따스한 봄날이라 벚꽃이 피고 / 개나리 흐드러지면 뭐 하겠니 / 그늘에 앉아 수박의 벌건 속살을 보며 / 더위를 다스린다 한들 뭐 하겠니 / 발밑을 노란 은행잎이 구르는 소리에도 / 그저 그러려니 / 마른 가지에 눈꽃이 피었다고 야단들이지만 / 가슴은 그저 먹먹할 따름인데 // 빨갛고 도톰한 입술 / 하얀 우유빵 같은 볼 / 아기자기한 이목구비 / 저음의 허스키한 목소리 / 검은 뿔테 안경까지 // 누구도 닮을 수 없고 따라할 수 없는 / 5차원의 재미를 간직한 민정아 / 너 혹시 별개미취를 아니? / 추억, 숨겨진 사랑, 너를 잊지 않으리 / 이런 꽃말을 가졌더구나 // 태어나 줘서 고마운 너에게 / 송이송이 한 잎 한 잎 / 정성을 담은 이 꽃을 바친다 / 용서하는 마음으로 받아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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