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영화 포스터.

고등학생 두 친구의 아빠와 엄마가 용납할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또 다른 엄마는 분명히 상처를 받을 것이다. 한 친구는 수습하고자 애를 쓰지만 어른들 일에 관심 없다는 다른 친구가 그냥 폭로해버리고 말았다.

“어이, 사팔팔오~!!”를 외치던 배우 김윤석이 감독으로 관객 앞에 섰다. 소재는 지치지도 않고 반복되는 ‘불륜’이며 제목은 <미성년 Another Child>이다. 개성 강하고 선 굵은 연기를 하던 배우의 감독 첫 데뷔작이 통속적인 소재에 색안경 쓰기 좋은 제목이니 그야말로 편견과 선입견의 함정에 빠지기 꼭 좋다. 그러다 뒤통수를 맞게 되었으니, 이름표를 가리고 보면 어느 여성 감독이 만든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교하고도 섬세한 연출이 돋보인다. (그러니까 여성감독 운운… 이런 식의 선입견 말이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연기자와 연출자의 협업의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관객은 대체로 연출자가 누구인지보다는 배우의 출연작으로 기억하는 법이다. 그럼에도 뭉뚱그려 표현하면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배우는 정해진 틀 안에서 배역을 해석하지만 결국은 디렉션이라는 필터를 거쳐 연출자의 요구를 반영하고 의도를 구현하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에 목말랐던 일부 배우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자 직접 연출자로 나서고, 그 중 일부는 대가의 반열에 오르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그저 변별력 없이 배우 출신 연출자라는 커리어 한 줄만 올리고 만다. 이게 감독 김윤석에 대한 시선과 우려인데, 훌륭한 데뷔작으로 말끔히 씻어내었다.
 
<미성년>은 모처럼 만나는 위트 넘치면서 정교한 형식미를 갖춘 영화다. 상식적으로 배우 출신 연출자의 메리트는 멍석을 어떻게 깔아야 배우가 신나게 놀 수 있을지 노하우를 가졌다는 데 있다. 이런 경험을 반영한 연출은 배우를 소품같이 함부로 쓰지도 않는다. 한 땀 한 땀 장인의 손끝으로 깎아 만든 듯한 연출로 캐릭터를 집요하게 밀어붙인다. 인간에 대한 깊고도 따뜻한 믿음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끌고 가는 집요함과 놀라운 집중력이 돋보인다. 그렇게 부끄러운 어른과 영민한 아이들의 정서를 세밀하게 묘사해냈다.

“첫 작품이 은퇴작이 아니었으면 한다”던 감독 김윤석의 말은 <미성년>을 본 관객 대부분의 바람이기도 할 것이다. <미성년>을 빚어낸 안목과 솜씨라면 어쩌면 한국 영화사에 남을 기막힌 블랙코미디 한 편도 기대해봄직하다. “김윤석 감독님, 차기작은 코미디로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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