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농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농업계 고등학교 졸업을 언급한 이유는 요즘 한창 논란이 일고 있는 외국어고등학교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때 평준화를 강하게 비판했던 한나라당 내에서 외국어 고등학교 존폐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일단은 환영이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19일 KBS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마녀사냥은 마녀가 아닌 사람을 마녀로 몰아서 사냥한다는 얘기지만, 외고는 분명히 마녀"라고 말하면서 '마녀 사냥' 논쟁까지 불붙었다. 

물론 정 의원은 자신은 외고폐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외고를 원래 목적대로 운영을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외고를 자율형 사립고나 자율학교로 바꾸자는 것은 교과부 내에서도 나온 안"이라며 "지금 일부 기득권 세력하고 사교육 업체, 완고한 교육 관료들만 저항하고 있는데,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다"고 말해 외고 입시 개혁의지를 분명히 표명했다. 

사실 외고는 외국어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만든 학교지만 이제는 일류대학을 가기 위한 길목으로 변질되어 설립 목적을 이미 상실했다. 당연히 본래 목적으로 돌려 놓아야 한다. 정두언 의원이 바라는 개혁이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저항은 강하다. 경기지역 4개 외고 교장 등은 19일 긴급 회동을 갖고 외고 폐지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고, 20일 3만여 학원업자들이 일제히 학원 문을 닫고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규탄하는 대규모 장외집회를 갖는다.


일부 언론도 외고를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비판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20일자 '더 많은 외고 만들고 빈곤층 자녀 기회 크게 늘려주라' 제목 사설을 통해 "지난 35년의 평준화 기간 동안 그나마 더 나은 교육, 국제 수준과 견줄 수 있는 교육을 향한 학생과 학부모의 갈증을 풀어줬던 것이 이들 학교"라면서 평준화 문제점을 해결한 교육기관으로 추켜세웠다. 

이어 "외고 교육을 통역사나 번역사를 길러내는 것으로 규정하는 건 보통 시대착오가 아니다"며 "글로벌 시대엔 어느 분야에 종사하든 외국어에 능통한지 여부가 인재의 몸값을 크게 좌우한다. 그렇다면 외고 출신 중 어문계 대학으로 진학하는 비율이 30%에 못 미치는 것이 외고의 존폐까지 거론해야 할 이유는 못 되는 것이다"고 해 정두언 의원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자율형 사립고로의 전환을 강하게 비판했다.  

<중앙일보>도 '외고 문제, 교육경쟁력 강화 틀 안에서 풀어야' 사설에서 "평등교육을 주창한 노무현 정부의 '외고 죽이기' 압박으로 곤욕을 치렀던 외고가 당시 외고 옹호론을 폈던 현 여권에 의해 다시 존폐의 기로에 내몰린 형국이라"며 "영어듣기시험 폐지 등 입시 제도는 손볼 수 있지만 외고 폐지 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사설은 이어 "인문사회영재나 글로벌 리더 양성 등 수월성 교육을 위한 학교 다양화를 외고 문제 해법의 하나로 검토해 볼 만하다"면서 "교육경쟁력의 요체는 좋은 학교가 많아지는 것이다. 외고를 없애자는 발상이야말로 한나라당이 그토록 비판했던 하향 평준화를 답습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그렇게 믿었던 한나라당이 외고를 자립형사립고로 전환하려 하자 외고 당사자들이 내놓은 것이 '영어듣기평가' 폐지 따위다. 그리고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도 영어듣기평가 폐지 정도는 가능하지만 외고 폐지 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나선 것이다.  

<조선일보>는 여기에 더해 "고액 과외를 받을 형편이 못 되는 아이들에게 외고의 문을 활짝 열어줄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일부 자사고가 추진하는 것처럼 저소득층에게 상당한 입학 쿼터를 줘 가난한 집 아이들도 뛰어난 교육환경과 유능한 선생님 밑에서 배워 세계적 대학에 진학하고 글로벌 인재로 자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영어듣기평가가 폐지되고, 가난한 학생들에게 외고문을 활짝 열어 준다고 외고문제를 해결될 수 있을까. 지금처럼 외국어고가 일류대학을 가는 입학전문학원 같은 모습에서 변화지 않는 한 외국어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가난한 아이들이 외고에 들어가도 일년에 기숙사비를 포함해 약 천만 원에 달하는 학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부모가 고소득이 아니면 들어가도 견디기 힘든 구조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특목고를 거쳐, '일류대학'을 졸업하는 것을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는 이들이 많다. 대학입시 설명회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그 구조에 들어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실업계를 나와도, 일류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그가 가진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내가 농업계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내가 바라는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다. 농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내가 바랐던 꿈을 실현하는데 전혀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도 자신이 바라는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5년 전에는 가능했는데 왜 지금은 안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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