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벚꽃

벚나무 꽃이 활짝 피었다. 연분홍 빛깔의 화려함으로 도시 전체가 환하다. 주말 내내 환해진 도시의 이곳저곳으로 사람들의 발길도 분주했다. 풍성함과 화려함으로 치자면 선진공원의 왕벚나무 꽃 잔치가 최고이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사천강변을 따라 핀 처진벚나무의 꽃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차창 밖으로 달리면서 본 와룡산에 드문드문 피어난 산벚나무의 꽃은 또 어떤가? 분홍색 물감을 묻힌 붓으로 무심하게 툭툭 두드린 듯 한 것이 설렘 가득이다.

벚나무는 장미과 벚나무속에 속하는 낙엽 지는 나무이다. 벚나무도 워낙 여러 종류가 있는 까닭에 엄밀하게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오목한 다섯 장의 꽃잎을 가진 꽃송이들이 긴 꽃자루에 매달려 핀다. 어긋나게 달리는 잎은 달걀모양이고 끝이 뾰족하다. 6~7월에 검붉게 익어가는 열매 버찌는 새콤한 맛이 난다. 그 옛날 간식거리가 별로 없었던 시절, 버찌를 따 먹으며 배고픔을 달래기도 했다. 친구들끼리 혓바닥과 입술 언저리에 묻은 검은색의 버찌 자국을 서로 닦아주면서 웃었던 기억도 새삼 떠오른다. 사실 벚나무는 버찌가 달리는 나무라는 뜻의 버찌나무가 변한 이름이기도 하다.

전국 곳곳에 많이 심겨져 벚꽃축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할 만큼 벚나무 꽃을 즐기고 있는 요즘이다. 하지만 한켠에서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마음을 감추기가 어렵다. 벚나무는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일본의 국화이며,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 대한 지배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벚나무를 심기 시작하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또한 벚나무가 일제히 꽃을 피웠다가 한순간에 낙화하는 모습이 마치 전쟁 때의 가미가제 특공대를 보는 것 같아 불편하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왕벚나무의 고향이 우리나라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에서는 왕벚나무의 자생지가 발견되지 못했는데, 오히려 제주도 한라산 500미터 정도에서 왕벚나무 자생지가 발견되었다. 1908년 한국에 와 있던 프랑스 신부가 한라산에서 처음 발견하였고 이어 1912년 독일인 식물학자에 의해 다시 확인되고 세계에 정식 학명이 등록되었다. 이 왕벚나무는 고도가 좀 더 높은 곳에 자라는 산벚나무와 더 낮은 곳에 자라는 올벚나무와의 자연 잡종으로 생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제주 신예리, 제주 봉개동의 왕벚나무와 해남 대둔산 자락의 왕벚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그래서 가진 자의 여유를 부린다면, 왕벚나무를 일본의 국화라고 하여 더 미워할 필요도 없고, 벚나무 종류를 아무데나 심는 다거나 우리 문화유적지에 왕벚나무를 심는 행동은 자제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조선시대 벚나무의 한 종류인 수양올벚나무를 많이 심은 임금이 있다. 효종 임금이다. 효종은 병자호란을 겪고 중국에 볼모로 잡혀가 치욕을 겪고 돌아와 왕이 된 인물이다. 수양올벚나무의 목재로 활을 만들고 껍질은 벗겨 활을 감아 손을 아프지 않게 하려고 신하들에게 명하여 나무를 심게 했다. 활 뿐만 아니라 벚나무의 목재는 탄력이 있고 치밀하여 경판을 만드는 데 귀히 쓰였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만든 나무의 64%가 산벚나무이다. 너무 무르지도 단단하지도 않고 재질이 균일하기 때문에 글자를 새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대장경판의 재료로 산벚나무를 쓴 이유는 구하기 쉬워서 이기도 하다. 이렇듯 벚나무도 우리 삶 가까운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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