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삼조 시인

최근 한 야당 인사가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이 분열한 것’이라는 발언을 해서 주목을 받았다. 여러 말 중에 끼인 한 부분이라 해도 이 말은 우선 어법이 낯설다. 아마 강조를 하려고 다소 낯선 표현을 썼으리라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 내용은 정말 낯설다.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반민특위는 없는 것이 더 나았던 기관이라는 셈이 된다.

이 말의 앞에는 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에 대해 ‘친일’이라는 올가미를 씌우려 한다는 말이 있었다. 더 앞에는 국가보훈처의 국가유공자 전수조사 비판이 있었다. 그러니 결국 ‘친일’을 빌미로 벌이는 정치 공작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한 말인 듯하다. 그러면서 반민특위 문제는 이런 논리를 뒷받침하는 예로 들게 된 것이고 그 예가 여러 시시비비를 불러온 결과가 된 것이다. 이 ‘낯선 예’는 발언 당사자가 ‘반민특위가 잘 되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 했기 때문에 부정적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는 논지’였다는 해명을 하고 이어 친일은 마땅히 지탄받아야 할 행위라는 견해를 밝혀 일단락되는 듯하다.

반민특위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줄인 말이다. 광복이 되고 정부가 들어섰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친일파 척결이었을 것이다. 조국을 배신하고 적국에 아부하여 동족을 괴롭힌 자들이 아무 처벌도 받지 않으면 향후 누가 조국을 위해 일하려 하겠는가라는 논지가 당연히 힘을 얻었으리라. 이에 따라 제헌국회에서는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하여 1948년 9월에 공포하였으며,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같은 해 10월에 설치되어 1949년 1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친일파를 옹호하여 이 반민특위를 부정적으로 보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으로 그 임무 수행을 방해하였다. 그 해 6월에는 경찰들이 반민특위를 습격하여 그 대원을 체포하고 무장을 해제시키는 일이 벌어져 반민특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그 해 10월에 반민특위 등을 해체하는 법이 국회를 통과하였고 1951년 2월에는 반민족행위처벌법도 폐지되어 친일파를 법정에 세울 기회가 없어지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을사늑약을 거쳐 경술국치에 이르기까지 우리 조정은 선전포고 한 마디 없었고 총 한 번 제대로 쏘지 못한 채 나라를 통째로 일제에 넘겨주었다. 오히려 왕족이나 고관대작이 아닌 민초들의 의병 활동이 빛났다. 이 일로 일제가 우리 강토를 도적질하고 우리 겨레를 노예시한 35년 세월도 원통한데, 그 일본이 일으킨 전쟁이 빌미가 되어 우리는 분단국가가 되었고 동족상잔의 큰 전쟁까지 치렀다. 우리만 분단되어 여전한 고통과 피해를 당하고 있는데 가해자인 일본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하여는 변변한 사과 한 마디 없이 경제대국이 되어 당당하기만 하다. 이런 일제에 동조하여 동족들을 괴롭히고 자신만의 안일을 추구한 자들이 이른바 친일파다.

세월이 지났다고 하여 이 친일파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우리 겨레의 고통이 어디에 원인이 있는지를 살피고 겨레의 고통에 편승하여 부귀영화를 누린 자들을 용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친일의 잔재를 말끔히 청소하는 것, 그것은 우리 역사를 깨끗이 하는 길이다. 나라가 바로 서려면, 민족반역자들이 다시 생기지 않게 하려면, 역사가 바로 서야 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