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호 사천시 향촌동

미세먼지가 극성이다. 상춘객을 모시고 올라선 바다케이블카 상부는 회색웅덩이였다. 수려한 삼천포대교와 한려수도 그리고 실안의 올망졸망한 풍경은 잔뜩 잿더미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조망의 설렘은 이내 실망으로 바뀌었지만 누구하나 푸념하지 않았다. 이 정도는 예상하고 왔다는 표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어느새 미세먼지에 내성이 생겨 버렸다. 걱정은 하지만 하루아침에 해결될 기미가 없다는 걸 잘 아는 게다.

연일 먼지 얘기로 시작해 먼지 얘기로 갈무리한다. “먼지가 먼지(뭔지)” 하는 자조 섞인 넋두리들이 일상어로 둔갑했다. 아침마다 오늘의 미세먼지 예보를 확인하고 하루의 활동과 계획을 세우는 요즘이다. 거리마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늘어나고 회사에서도 방진제품들을 배부하는 조치가 내려지고 있다. 실내운동이 장려되고 먼지를 이겨내는 차와 음식들도 인기다. 미세먼지를 대하는 우리의 방식이 오히려 친근해 불안한 요즘이다.

그러고 보면 내 유년의 시절 아니, 불과 십여 년 이전에도 봄은 기다림의 계절이었다. 겨우내 잠들었던 나무마다 보드랍고 연약한 새순과 꽃, 잎들이 앙증맞게 피었다. 그뿐이랴, 쑥과 냉이 달래도 지천으로 돋았다. 들판마다 나물 캐는 여인들의 모습은 마치 아지랑이처럼 고물고물 피어올라 우리네 저녁상을 행복하게 꾸몄다.

봄꽃은 또한 꼬맹이들의 주전부리로도 손색이 없었다. 온 산 가득 연분홍 진달래가 잔치를 열 때면 삼삼오오 소몰이하러 산에 올라 진달래 꽃잎을 따서 허기를 채우기도 했고 어느 저녁엔 누나의 고운 솜씨에 녹아 화전으로 탈바꿈하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참 선명하고 물색 좋은 봄이었다. 그 봄의 화창함은 가을까지 파란하늘을 수놓았다.

그런 봄날은 이제 없다. 연분홍 치마를 날리던 그 화사한 봄바람은 이제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쑥 캐러 가자던 아내의 연례행사도 멎었고 매화축제도 희뿌연 먼지 속에 그 빛을 잃었다. 향기 잃은 비닐하우스 나물들이 봄을 연출하고 꽁꽁 싸맨 등산객들도 외계인처럼 오가는 각산 등산로에 그 봄날의 진달래는 어떻게 피고 질지 난감한 걱정을 한다.

건강한 성인들이야 그래도 견딜만하다고 해도 어르신들이나 특히 어린 아이들 둔 부모들의 걱정은 중병 수준이다. 마치 전쟁터에 아들을 보낸 엄마의 심정으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다. 뚜렷한 대책도 없이 그저 마스크 씌워 주고 야외활동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하는 딱 그만큼의 조치가 실은 거대한 미세먼지에 대응하는 우리의 방식이어서 슬프다. 그래도 봄 축제 소식을 지인들에게 나누며 깨알정보랍시고 으쓱대는 내 어깨는 한 가닥 민망함이 스멀거린다. 진정 春來不似春인가.

무엇보다, 국민모두가 숨쉬기 힘든 극한직업에 종사하는데도 뚜렷한 정책적 대안이 없다는 게 갑갑할 따름이다. 마스크 쓰고 공기청정기 설치하고 도로를 씻는 단편적 조치부터 차량운행 제한과 화석에너지 시설의 운전 감축 같은 정책적 대안도 뒤따르고 있다. 허나 이 또한 속 시원한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이웃 나라 간 공조도 별 소득이 없다.

이러니 지금으로선 각자도생이 답이다. 개인위생을 철저히 지키고 야회활동을 자제하는 등 건강관리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하는 게 오늘날 우리의 책무다. 긴 겨울 잘 이겨냈다. 그리고 봄이다. 그러나 그 봄이 아니지만 그래도 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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