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영화포스터.

연이어 개봉한 대작들이 슬슬 물러서고 극장가에는 이른바 비수기가 시작됐다. 이 시기에 입소문을 잘 타면 제작사 입장에서는 재미가 쏠쏠한데 그런 의미에서 <이스케이프 룸>은 영리한 선택을 했다. 흥행관을 독식하며 이미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캡틴마블>과는 아예 경쟁할 생각이 없으며, 바로 그 지점에 이 영화의 전략이 위치한다. 북미 개봉 첫 주인 지난 1월 제작비의 두 배가 넘는 수익을 거둬들이고, 현재 12배를 기록했다고 하니 이 전략은 적중한 셈이다.

거액의 상금, 6개의 죽음의 방, 저마다 다른 사연을 지닌 6명의 사람들. 자연스레 <큐브> 또는 <쏘우>를 연상케 하는 <이스케이프 룸>의 기본설정은 몇 문장의 간단 요약만으로 어느 정도 영화의 결말까지 예상할 수가 있다. 실제로 뒤통수치는 반전의 재미보다는 방탈출 게임이라는 장르적 쾌감에 집중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런 종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마니아층에게 어필하기 위한 요소로 <쏘우>의 대사인 “let’s play a game”을 클리셰로 차용하기도 한다.

문제는 수없이 재생산된 장르였던 만큼 빤한 클리셰의 반복에서 오는 기시감과 피로감이다. 아마도 영화의 기획개발단계에서 ‘잔인함과 공포는 부족하지만 관람 연령대를 낮추어 더 많은 관객까지 끌어들이자는 전략’을 선택을 한 것 같은데, <이스케이프 룸>은 긴장감과 스릴감은 넘치되 복선 자체가 느슨해서 추리하는 재미는 많이 떨어진다. 마치 술이 너무 독하다고 맹물을 잔뜩 탄 것처럼 <쏘우>나 <큐브>에서 맛보았던 스릴, 서스펜스, 공포감이 상당히 희석돼 있다. 뭔가 짜릿한 새로운 것을 기대했다면 실망스러울 수 있겠다. 그러나 장르적 쾌감으로 받아들이자면 최고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즐길만하다.

<이스케이프 룸>의 가장 큰 미덕은 욕심 부리지 않는다는데 있다. 스릴의 강도가 낮아진 만큼 재미도 반감될 법한데 오히려 몰입도를 한껏 끌어올렸다. 하우스 호러물인 <인시디어스4 : 라스트 키>를 연출한 애덤 로비텔 감독은 공포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 지를 잘 알고 강도를 조절하는 재주도 나무랄 바 없다. 다만, 영화가 암시하는 2편을 제작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는 글쎄다.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기에는 한 번은 괜찮지만 두 번은 지루하다는 것이 모험하지 않는 영화의 장단점이어서 그렇다. 설마 첫맛은 싱겁게, 새로운 메뉴는 더욱 자극적이게 하겠다는 생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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