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훈 기자의 ‘베트남 이야기’ ②한국보다 많은 한국인

사천 출신인 동아일보 강정훈 기자(부산경남취재본부)는 지난달 23일부터 28일까지 베트남 호찌민과 다낭을 다녀왔다. 급변하는 베트남의 ‘오늘‘을 살피고 ’내일‘을 예측해 보기 위한 출장이었다. 하노이에선 27~28일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베트남을 처음 찾은 강 기자의 눈에 비친 베트남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주제별로 세 차례에 나눠 싣는다.(①오토바이, 오토바이 ②한국보다 많은 한국인 ③사이공강, 다낭 한강) -편집자-

다낭의 미케비치 해변.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기는 한국인이 많다.

“보이소, 요~도 함 찍어 주이소. (보세요, 여기도 한 번 찍어주세요.)”

경상도 사투리를 만날 줄이야! 서울, 광주, 부산도 아니고 한국에서 무려 3000㎞ 떨어진 베트남의 중부 휴양도시 다낭에서. 지난달 26일 오후, 다낭의 아름다운 해변 미케비치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에 자리 잡은 린응사(靈應寺). 바다를 향해 우뚝 선 해수관음상 주변에는 동양인들이 가득했다. 몇 명을 빼고는 모두 한국인. 이국(異國)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한국의 사찰보다 한국인이 더 많다는 사실.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린응사에서 택시로 20분 거리인 므응탄 럭셔리 다낭호텔. 이곳의 로비, 카페에도 한국인이 넘쳤다. 뷔페식당의 아침은 한국 여느 호텔을 그대로 옮겨 놓은 모습이었다.

다낭에서 가장 높은 40층 건물인 므응탄 럭셔리는 미케비치와 가깝고 전망이 좋아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숙소다. 그래서인지 ‘세계 6대 해변’으로 선정된 미케비치 백사장에도 수영하고 일광욕을 즐기는 한국인으로 왁자지껄했다. 미케비치의 길이는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1.5㎞)의 15배 정도다.

▲ 베트남 다낭공항 출국장의 인파들. 100명에 99명은 한국인이다.

현지 가이드인 김 선생은 “한국~다낭 노선에는 주중에 28편, 주말엔 32편의 비행기가 뜬다. 하루 평균 2500~3000명의 관광객이 몰려온다”고 전했다. 윤상기 하동군수와 함께 다낭시청을 방문했을 때 빤띠 뚜어링 노동보훈사회국장(45·여)은 “작년에 한국 관광객 170만 명이 다낭을 다녀갔다”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365일 동안 매일 4657명씩 다낭을 찾은 셈이다.

베트남의 한국어 신문인 ‘베한타임즈’는 현지 언론보도를 인용해 올해 1월 베트남을 찾은 한국 관광객은 38만9000명으로 중국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늘어난 것. 외국인 전체 관광객 150만1800명의 26%를 차지했다. 2018년 베트남을 관광한 한국인은 330여만 명. 현지에서 한 사람이 50만 원씩 쓰면 무려 1조6500억 원이다. 항공료를 빼고서도.

남중국해에 접한 다낭만에 위치한 다낭(베트남어로 ‘탁한 하천’이라는 뜻)은 프랑스 지배시절부터 군항이었다. 월남전 당시엔 미군의 최대 군사기지였다. 지금도 린응사 뒤 산 정상에는 레이더 기지가 보인다. 다낭에선 2년 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가 열렸다. 최근 외국인 투자도 많다. 다낭의 600개 개발 프로젝트 가운데 144개는 한국과 관련된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인구 100만 명의 다낭엔 한국 관광객이 쏟아지고 있다. 겨울철 평균 기온이 23도여서 이 기간에 특히 많이 찾는다. 방학을 맞은 자녀를 데리고 방문하는 관광객이 자주 눈에 띈다.

지난달 27일 오후 세계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던 해발 1500m의 놀이동산이자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며진 ‘바나힐’에서도 역시 한국인이 넘쳤다. 분수대 주변과 커피숍, 형형색색의 꽃밭에서 한국인은 스치고 또 스쳐갔다. 다낭 시내 핑크성당(다낭 대성당)에서 기자의 사진을 찍어 준 사람도 우리 관광객이었다.

치킨 가게, 부동산 소개소도 교포들이 선점했다. 한국인이 몰리면서 다낭의 한국인 가이드도 2000명이나 된다. 다낭은 외국인 가이드 1명에 현지 가이드 1명을 반드시 동행하도록 강제한다. 관광객 관리, 일자리 창출 차원이다. 따라서 다낭에서 활동하는 전체 가이드는 5000명에 가깝다.

김 선생과 함께 기자 일행을 안내한 현지 가이드 투짜(25)는 대학을 졸업하고 영어와 한국어도 곧잘 하는 엘리트 여성. 투짜는 “활동적이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가이드가 좋아 선택했다. 비자 발급이 쉽지 않아 아직 한국 여행은 한 번도 못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아담한 체구에 조용조용한 말씨의 투짜는 선한 눈매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박항서 감독 때문에 한국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투짜의 말처럼 박항서 감독의 인지도와 인기는 대단했다. 박 감독과 함께 찍은 사진을 프린트 한 티를 입고 다닌 기자에게도 관심을 보일 정도였다. 엄지손가락을 세우거나 “박 감독과 어떤 관계냐”고 묻기도 했다. 기자는 박 감독이 경남프로축구단 감독을 맡을 당시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 박 감독은 광고모델로도 인기다. 신한은행 호찌민 법인, 삼성 갤럭시 휴대폰 광고 모델로도 만날 수 있었다.

▲ 박항서 감독 광고판 옆에 선 필자.

박 감독은 기자와 통화에서 “하노이와 다낭, 호찌민 인근 소도시를 다니면서 재능기부 행사 등을 하느라 바쁘다. 여전히 베트남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하동군 ‘에코맘의 산골이유식’(간식류), ‘남경오가닉팜’(버섯),
‘슬로푸드’(배즙, 곶감)도 현지 시장 진출을 꾀하고 있다. 진주의 화장품 업체인 ‘선마린바이오테크’ ‘KB코스메틱’도 마찬가지다.

다낭으로 이동하기 전 기자가 찾았던 호찌민에서도 한국인은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었다. 숙소인 쉐라톤 호텔 로비도 사실상 ‘한국’이었다. 다만 한국어 안내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우리 정부의 관심이 필요한 대목.

김병범 경남도 호찌민사무소장은 “베트남은 분명 기회의 땅이며, 한국의 브랜드가치도 높다. 우리 업체끼리의 과당경쟁을 자제하고 현지인에 대한 예우와 배려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천박하게 돈 자랑 하지 말라는 충고였다.              

강정훈(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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