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곧 국가다.” 국가가 없는데 국민이 존재할 수 있느냐며 국민의 분노와 저항을 백안시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러나 링컨의 그 유명한 말처럼,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가가 아니라면 그 국가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오늘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모든 국가의 존재 이유는 오직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있다.

헌법은 제1장 총강에서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의 국체, 국민주권주의, 영토와 통일조항에 이어 침략전쟁의 부인과 국군의 정치적 중립, 조약과 외국인의 지위, 공무원과 정당, 전통・민족문화 계승 등을 규정한 후, 제2장에서 국민의 권리와 의무 조항을 두고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헌법 제10조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인권보장 규정으로 우리 헌법 최고의 근본규범이다. 헌법의 개정을 통해서도 위 규정은 폐지될 수 없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모든 기본권 보장의 목적이고 모든 국가권력을 구속한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므로 상호간에 긴장과 갈등이 발생하면 국민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또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은 헌법에서 열거되지 아니한 기본권의 존재 근거가 된다. 헌법재판소는 간통죄 헌법소원사건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서 도출되는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는 개인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전제되어 있고, 위 자기운명결정권에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그 외에도 알 권리나 생명권과 관련한 낙태, 안락사, 사형제도 등 허용여부에 관한 사회적 논란에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지난 약 20년간 단 한 번도 형이 집행되지는 않았지만 아직은 존치하고 있는 사형제도는 생명 그 자체를 부정해버리는 것으로서 인간의 존엄 그 자체의 말살이고 사형집행인 등의 존엄도 침해하는 것으로서 위헌이라고 본다. 낙태의 허용여부와 관련하여서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조화로운 해석이 필요하다.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고통없는 방식으로 생명을 단절시키는 ‘적극적 안락사’는 허용되지 않는다. 형법상 살인죄에 해당함이 당연하다. 그러나 ‘소극적 안락사’ 즉 무의미한 생명연장 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 이른바 ‘존엄사’는 환자가 인간의 존엄을 지키면서 죽을 권리와 생명권이 충돌하는 문제가 있지만 이를 빙자한 살인죄의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엄격한 요건 하에 허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이라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 국가임에도 오히려 국가가 아니, 국가권력을 부정하게 탈취하고 유지해온 자들이 국가의 이름으로 이를 유린해 온 역사 앞에 우리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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