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련.

미세먼지로 갇힌 요즘이지만 어김없이 봄은 오고 꽃은 피어난다. 기온마저 평년보다 높아 더 일찍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그러나 지난주가 최악이었던 것 같다. 실외활동을 자제해달라는 안전안내문자가 날아든다. 한반도 전체가 거대한 미세먼지 돔에 갇힌 탓에 봄은 왔으되 반갑지 않았다. 누구말대로 재앙수준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까? 뿌연 회색빛에서 벗어나 푸른빛 하늘 아래 마음껏 숨 쉬고 싶은 일상을 이렇게나 간절히 희망해보기도 처음이다.

다행히 주말 동안 봄비가 제법 내려 미세먼지가 물러났다. 비오는 날 바깥 외출은 귀찮은 일이지만 깨끗한 공기가 더 간절하니 외출이 즐겁기까지 하다. 우산을 눌러쓰고 찰박거리는 길을 걷다가 주택가 담장 안에 탐스럽게 핀 하얀색 꽃을 보았다. 이 봄에 하얀색 꽃이라니 목련꽃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백목련꽃이었다. 하늘을 향해 하얀 등불을 밝힌 듯 피어난 꽃과 아직 털복숭이 꽃봉오리를 단 백목련.

목련(木蓮)은 ‘연꽃 모양의 꽃이 피는 나무’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메말라 보이는 가지에 눈부시게 새하얗고 커다란 꽃으로 존재감을 알린다. 목련꽃은 약간 길쭉한 주걱 모양의 꽃잎이 6~9장이고, 아주 작은 세 장의 꽃받침이 있다. 길쭉한 꽃잎이 마치 결혼식 때 신랑신부가 끼는 하얀 예식 장갑처럼 보인다는 이도 있다. 이렇게 강한 인상을 주는 목련꽃도 피기는 잠시, 봄비라도 내리고 나면 꽃이 한꺼번에 바닥에 떨어진다. 떨어진 꽃잎이 지저분하게 보여 목련꽃이 싫다는 사람들도 있다. 꽃이 진 후 나오기 시작하는 넓은 잎은 사람 손바닥처럼 크고 둥글며 탱탱하다. 닭의 볏을 닮은 열매는 점점 붉은색으로 익어가다가 9~10월이 되면 울툭불툭 튀어나온 곳이 벌어지면서 주황색의 예쁜 씨를 내놓는다. 열매를 벌리고 씨를 당기면 실처럼 하얀 줄이 가늘게 빠져나온다.
 
목련은 꽃과 열매 못지않게 겨울동안 가지 끝마다 달리는 겨울꽃눈이 특이하다. 다른 나무보다 크기도 하고 뾰족한 꽃눈에는 소복한 털이 나 있다. 그 모양이 붓을 닮았다 하여 ‘목필(木筆)’이라고 한다. 목련꽃은 좋은 약재로도 쓰이는데 맵다는 뜻이 들어간 ‘신이(辛夷)’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또한 목련은 북향화(北向花)‘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목련의 꽃봉오리를 자세히 살펴보면 북쪽으로 조금씩 휘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햇볕을 잘 받는 남쪽 방향의 꽃봉오리 겉껍질이 반대편보다 더 크게 부풀어 오르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생겼다고 한다.

목련이 우리 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삼국유사> 가락국기 편이다. 김수로왕의 왕비가 되는 인도의 아유타국 공주인 허황옥을 맞이하기 위해 사람을 보낸다. 이때 목련으로 만든 키를 바로잡고, 계수나무로 만든 노를 저어 그들을 맞아들였다는 기록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목련은 엄밀하게 말하면 중국이 원산인 백목련이다. 그냥 하얀색 꽃이 목련과 크게 다르지 않아 편하게 목련이라고 부르지만 진짜 ‘목련’은 한라산이 고향인 우리나라 나무이다. 이 외에도 목련의 종류에는 보라색 꽃의 자목련, 꽃잎이 더 길고 갈라지는 별목련, 5월말쯤 산속에서 늦게 피는 ‘함박꽃나무(산목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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