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6.20 목
사회
사라진 111년…‘사천 사직단’ 위치 찾나일제강점기 만든 지적도에 ‘사주리 174(社)’ 주목
하병주 기자  |  into@news40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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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12  13:4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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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사주·용당지구 공동묘지 내 일부…상당부분 훼손
주변엔 기와·자기 조각 여럿 보여…정밀 조사 필요
사천시 반응은 ‘싸늘’…학예사 “단정 못해, 늦었다”

   
▲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 조현근 사무국장이 ‘사천 사직단’으로 추정되는 사주리 174번지를 둘러보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사천 사직단’의 위치가 111년 만에 드러날지 주목된다. 다만 사직단 추정 터 주위로 택지개발이 진행 중이라 발굴조사가 시급한 상황이다.

‘사천 사직단’의 위치로 유력하게 떠오른 곳은 ‘사천읍 사주리 174번지’이다. 이곳은 국도3호선과 사천강을 끼고 있는 낮은 산으로, 현재 사주‧용당택지개발사업이 진행 중이다. 사천자활센터의 서쪽 맞은편에 있으면서 주위로 공동묘지가 둘러싼 곳이다.

이곳은 조선후기 지방지도(1872년 제작)에 표시된 내용과 비슷하고, 사천읍지 등 문헌에 ‘현에서 남쪽으로 3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한 대목과도 겹친다. 무엇보다 일제강점기이던 1916년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지적도에서 해당 지번에 ‘社(사)’라고 표기하고 있어 그 가능성을 한층 더한다. 오늘날 지적도에는 ‘종’(=종교시설)이라 표기하고 있다.

   
▲ 조선후기 지방지도에 표기된 사천읍성과 사직단.

이곳을 ‘사천 사직단’으로 유력하게 꼽은 이는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 조현근 사무국장이다. 조 국장은 지난 9일 회원들과 함께 사천읍성을 답사한 뒤 ‘사천 사직단’의 위치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음에 주목했다. 답사를 마친 그는 창원으로 돌아간 뒤 수수께끼를 푸는 데 골몰했다. 앞서 언급한 고지도와 지적도 등을 살폈다. 결국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사천읍 사주리 174번지’를 ‘사천 사직단’ 터로 지목했다.

   
▲ 1916년 지적도에 표기된 사주리 174번지.

조 국장은 이튿날인 10일 뉴스사천을 직접 방문해 이 사실을 알렸다. 이어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뉴스사천과 현장을 함께 확인했다. 하지만 사직단 추정 터는 택지개발공사로 이미 파헤쳐진 상태였다. 174번지의 경계지점만 간신히 남은 상황. 다만 기와나 자기 조각들이 흩어져 있어, 이곳이 그 옛날 사직단일 수 있음을 말하는 듯 했다.

   
▲ 사주리 174번지에서 발견 된 기와 조각들.
   
▲ 사주리 174번지에서 발견 된 기와 조각들.

현장을 둘러본 조 국장은 “여러 정황 상 이곳이 사천의 사직단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하고, “조금만 빨랐어도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그러나 사천시의 반응은 예상 밖이다. 11일 사천시청 김상일 학예사는 “절터일 수도 있고, 기와 몇 편이 나왔다고 해서 사직단으로 단정하기 힘들다. 방향이나 규모 면에서도 의문점이 많다”며 평가절하 했다. 이어 “(택지개발)사업 과정에 지표조사를 했음에도 별 게 없었다면 이제 와 조치하기도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 조현근 사무국장은 “시의 반응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기와조각 등은 174번지 주변에만 있고, 일제 때 만든 지도에는 분명히 사적지임을 표시하고 있다”며 “그렇다면 기초조사부터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 택지개발로 파헤쳐진 사주리 174번지 터.

사천시의 주장처럼 본격적인 택지개발에 앞서 진행한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의미 있는 징후가 포착되지 않은 것도 의문이다. 문화재 지표 조사가 졸속으로 진행되지는 않았는지 확인이 필요한 대목이다.
 
한편, 사천시는 2015년 7월에 ‘곤양 사직단’ 터를 어렵게 발굴해 놓고도 3년 넘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해당 터가 개인 소유 땅”이라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사천시는 아직 해당 지주와 아무런 접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천시의 이런 태도는 사직단을 정비해 경남도 기념물로 지정‧관리하는 진주시와 창녕군 등 도내 다른 지자체와 비교된다.

사직은 토지를 관장하는 사신(社神)과 곡식을 주관하는 직신(稷神)을 가리킨다. 따라서 사직제(社稷祭)는 곧 백성들의 안위를 기원하는 개념으로, 삼국시대부터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우 귀하게 여겨온 제례다.

그러던 1908년, 왕실은 일제강압에 의해 사직제를 폐지하게 되고 이때부터 사직단은 급격히 흔적을 잃게 된다. 만약 사주리 174번지가 사천의 사직단이 맞다면, 일제는 조선 왕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사직단 자리에 공동묘지를 조성한 셈이다. 일종의 민족문화말살 정책과 맥을 같이한다. 그런 역사의 흔적을 되찾고 확인하는 일이 풍전등화(風前燈火)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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