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몇 해 전부터 꾸준히 산을 다니고 있다. 모 등산용품 회사가 운영하고 있는 백대명산 도전프로그램을 좇아 불편한 장거리 버스타기를 주저하지도 않는다. 한반도 평화, 남북교류에 대한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금강산 관광만이 아니라 혹시나 내가 걸을 수 있는 동안에 백두산, 묘향산, 구월산, 칠보산 등 북한의 명산을 오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들뜬 기대감이 얼마 전 미국과의 회담결렬 소식에 와르르 무너지는 듯 했다.

우리 헌법 제3조는 영토에 대해, 제4조는 통일정책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관련하여 영토 및 통일 조항의 조화로운 해석이 더욱 필요한 요즘이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제3조).따라서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이고 북한지역은 대한민국 영토의 일부이나 현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불법적인 ‘반국가 단체’가 지배하고 있는 미수복 지역이므로 헌법의 효력은 북한에도 미친다고 보는 것이 종래의 지배적인 견해였다. 한편,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제4조). 북한이 통일의 동반자로 인정되므로 위 영토조항과 모순되는 점이 있고, 그래서 위 양 조항의 조화로운 해석이 필요하다.

즉 영토조항은 1948년 제헌헌법이 당시 하나의 독립된 국가건설의 열망 속에 막 시작된 분단을 헌법이 인정하기 어려운 사정에서 제정된 것이라면, 통일조항은 분단된 현실과 국제법상의 원칙에 따라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하고 통일을 지향하기 위한 규정으로 해석해야 한다. 북한 역시 UN에 가입하는 등 국제관계에서의 국가성을 부정할 수 없는 점에서 헌법재판소는 일찍이 남북관계를 민족공동체 내부의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로 표현한바 있다. 순수한 국제관계와도 구별되고 국내관계와도 동일하지 아니한 특수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35년간 식민지배의 핍박을 가한 일본과도 해방 후 채 20년이 지나지 않아 국교를 열었고 한국전에 참전해서 북한을 도와 통일을 가로막은 중국과도 국교를 튼 지 30년이며 타국의 전쟁에 적국으로 싸운 베트남과의 교류도 활발한데, 유독 북한과의 교류만이 지난 55년간 단절되어 왔다. 타국에, 타민족에 이다지 관대하면서도 유독 우리 민족에게만 분노와 적대의 창끝만을 겨눠온 사실이 오히려 이상하다. 헌법이 정한 평화통일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도, 북한이 붕괴된다고 저절로 되는 것도 아니다. 한반도의 평화가 정착되고 자유로운 왕래가 이뤄지면 그것이 곧 통일이다. 걷혀진 휴전선 철조망을 따라 한반도의 허리를 걷고, 북한의 명산을 오르내리는 날이 내 생에 와주기를 꿈꾼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