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수초.

얼었던 땅을 뚫고 때론 수북이 쌓인 눈을 헤치고 피어나는 복수초(福壽草)가 한창이다. 이름만 들으면 무림 세계의 처절한 싸움을 연상시키지만 사실은 복(福)과 장수(長壽)를, 또는 부유(富裕)와 행복(幸福)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아무리 품은 뜻이 좋아도 ‘복수초’라고 입 밖으로 뱉는 순간 처음 떠오르는 복수혈전의 이미지를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사실 복수초는 일본식 한자명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좀 더 신중하게 우리식으로 수복강녕을 뜻하는 ‘수복초’로 지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이름이 주는 불편함을 느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나 보다.

몇 년 전 광복 70년, 우리 꽃에 붙은 일본식 이름을 바로잡자는 취지의 활동을 벌인 사람들이 있었다. 부르기에도 좋고 식물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우리식 이름을 두고 듣기 거북한 이름을 부르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였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며느리밑씻개, 개불알풀 등이 있다. 복수초도 그 중 하나이다. 크게 확산되지는 못했지만 숲친들 사이에서는 동의가 되어 며느리밑씻개는 산에 사는 야생 고양이라는 의미의 사광이(삵괭이)를 닮았다고 하여 ‘사광이아재비’로, 개불알풀은 까치가 기쁜 소식을 가져다 주는 것처럼 봄소식을 가져다 준다고 하여 ‘봄까치꽃’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복수초는 무엇일까? 복수초의 우리 이름은 ‘얼음새꽃’이다. 이른 봄 눈과 얼음을 뚫고 꽃이 핀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그 외에도 중부지방에서는 쉽게 ‘복풀’이라고 하고, 눈 속에 피는 연꽃 같다고 해서 ‘설연’이라고도 한다. 새해 들어 가장 먼저 핀다고 하여 원일초(元日草)란 별칭도 있다. 올해가 3·1운동 100년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가진 해이고 보니 더 간절히 우리 정서에 맞는 이름을 널리 불러주고 싶다. 

복수초에는 전해지는 전설이 있다. 일본 북해도에는 ‘아이누족’이란 원주민이 살고 있었는데  특별히 크론이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크론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으나 아버지는 외동딸인 그녀를 용감한 땅의 용신에게 강제로 시집을 보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크론은 연인과 함께 밤을 틈타 다른 지방으로 도망을 가서 숨어버렸다. 이에 노한 아버지는 사람을 풀어 그들을 찾아내었고, 화가 난 나머지 꽃으로 만들어 버렸는데 그 꽃이 바로 ‘복수초’이다. 이때부터 이들이 찾아 떠난 ‘영원한 행복’이 복수초의 꽃말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새해가 되면 복수초를 선물하는 풍습이 남아있다. 

복수초는 숲속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햇볕이 잘 드는 양지와 습기가 약간 있는 곳에서 잘 자란다. 꽃대가 올라와 노란 꽃이 피면 꽃 뒤쪽으로 잎이 젖혀지기 시작한다. 꽃 한가운데는 노란색 수술이 가득 모여 있고, 그 수술 속에 돌기가 여러 개 난 연둣빛 암술이 들어있다. 복수초는 꽃 못지않게 6~7월경에 맺는 열매가 특이하다. 별사탕처럼 울퉁불퉁하게 달리는 게 복수초의 열매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마치 또 하나의 꽃봉오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대표적으로 3종류의 복수초가 있다. 주로 제주도에서 자라는 세복수초와 개복수초, 그리고 복수초가 바로 그것이다. 여름이 되면 온도가 올라가 말라죽고 자취를 감추고 마는 것이 이들 복수초들의 특징이다. 그렇게 사라졌던 복수초가 새해를 맞이한 후 가장 먼저 피어나 존재를 알린다. 요즘에는 화단이나 화분에 많이 심어 흔하게 꽃을 감상할 수 있어 굳이 깊은 산속에 들어가지 않고도 볼 수 있으니 왠지 신비감이 사라진 듯하다.

▲ 박남희 (숲해설가 / 교육희망사천학부모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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