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설 지난 지 대략 보름이 됐지만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에만 해도 정월대보름날까지는 설이라 했다. 이 즈음 정월대보름날에는 지신밟기 달집태우기 등 민속 행사가 풍성하였다. 다 알다시피 설은 음력의 그 해 첫 날이고 만물이 소생하기 시작하는 때를 상징적으로 가리키는 날이다. 과연 그 설이 한 보름 지나니 매화꽃도 한창이다.

우리가 아는 옛 조상들은 거의 음력을 써 왔다. 거기에 양력 개념의 24절기를 혼용해 썼다. 세상의 주류가 서구문화 쪽으로 바뀌자 우리도 양력을 채용해 쓴 지 꽤 되었다. 양력에 익숙해지다 보니 음력의 새해 첫날인 ‘설’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더러 있는 모양이다. 실제 생활에서 양력을 쓰니 양력의 새해 첫 날이 설이 되는 것이 맞지 않는가라는 주장이다.

과거 일제강점기와 그 후의 각 정권 시기에 위정자들은 한결같이 이 음력의 ‘설’을 인정하지 않으려 들었다. 심지어는 ‘설’을 공휴일에서 제외하여 각 관공서와 학교는 이 날 문은 열었으되 일과 학업은 없는 일과를 억지로 맞기도 했다. 누가 ‘설’에 민원을 해결하러 올 것이며 무슨 흥미가 일어 ‘설’에 수업을 하겠는가. 항간에서 ‘일본 설­왜놈설’이라 비하하는 ‘양력 설­신정(新正)’을 쇠라고 아무리 닦달을 해도 사람들은 요지부동이었고 결국 1980년대 중후반에 들어 ‘설’이 정식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사람의 정서는 권력의 강압으로 억누를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러니 이 ‘설’을 양력에 쇠어야겠다는 것은 민중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짧은 의견이 아닐 수 없다.

이 설 문제와 함께 우리나이 셈법도 도마 위에 오른 모양이다. 우리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한 살, ‘설’을 쇨 때마다 한 살씩을 더한 나이로 나이를 셈한다. 그러니 섣달그믐날에 태어난 아기가 난 지 하루 만에 두 살이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해 혼란스럽다는 것이고 차제에 세계적 대세인 만 나이를 공식적으로 채택하자는 주장이다.

이 주장도 일면은 그럴싸해 보여도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덕성을 헤아리지 못한 잘못을 범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아이가 잉태되어 엄마 뱃속에 자리 잡게 되면 그때부터 생명을 가진 것으로 본 것이고 그 생명이 세상에 나오면 이미 한 살을 먹은 것으로 보았다. 이에 말미암은 태교(胎敎)는 아이 가진 사람으로 하여금 나쁜 생각조차 떠올리는 것을 금기시했으니, 인성(人性)과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옛 사람들의 마음 씀이 절로 엿보인다. 태어나면 한 살, 무엇이 불편한가. 그리고 설을 쇤다는 것은 생명이 움트는 기운이 가장 왕성한 시기를 온전히 거친 일이었기에 설을 쇠면 한 살을 더한 것이다. 지혜로운 나이 셈법이 아닐 수 없다.

양력설을 쇠자는 것도 만 나이 제도만 쓰자는 의견도 편의 위주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불편한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단순화 획일화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단순화 획일화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기계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좀 불편하더라도 음력도 헤아리고 태어난 해나 띠를 이용하여 나이를 비교해 보자. 아름다운 우리 고유전통도 잇고, 요즘 말썽 많은 치매를 막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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