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의 배우며 가르치며]

▲ 송창섭 시인.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인근에 있는 오크파크(Oak Park)를 찾았습니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기분은 낡고 찌그러진 깡통같이 우중충했습니다. 더듬어서 이른 곳은 이 조용한 마을의 339번지였습니다. 작은 탑 모양의 지붕과 둥근 베란다 그리고 높은 천정과 커다란 창문이 특징인 빅토리아 앤 왕조 풍의 아담한 2층집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집 앞에는「ERNEST HEMINGWAY BIRTHPLACE Since 1899」라고 적힌 세움 간판이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존재를 나직이 알리고 있었습니다. 이 집이 헤밍웨이의 출생지임을 새긴 자그마한 평판 또한 뜰 한 쪽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보았던 여러 문인들의 생가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작품 구절을 새긴 비석이나 동상 또는 흉상 하나 세워져 있지 않으며 간판 외에는 어떤 홍보물도 없었습니다. 차를 타고 찾아가는 도중에도 그에 관한 알림글은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어 놀랍고 의아했습니다.

생가는 헤밍웨이가 살았을 때와 똑같은 모양으로 복원을 해 놓았습니다. 다만 거울과 의자, 침대 그리고 서재의 책들은 가족들이 실제 사용했던 소유물이고, 다른 가구와 비품들은 그 시대에 썼던 동일한 물건들로 대치한 것입니다. 특히 시선을 끄는 건 2층 복도에 붙여놓은 수십 장의 가족사진이었습니다. 외조부모부터 부모, 형제자매가 함께한 단란한 모습 등 집안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서재는 헤밍웨이 가족들에겐 매우 중요한 공간이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많은 책들을 접하며 지식의 영역을 넓힌 영혼의 세계였습니다. 주위의 나무숲과 초원 역시 대화를 나누고 거닐며 상상력을 키웠던 곳입니다. 가족들은 말이나 마차를 타고 가까이 있는 데스플레인강으로 가서 여가를 보냈습니다. 유년 시절 헤밍웨이는 아버지로부터 낚시와 사냥, 텐트 치기와 불 피워 요리하기 등을 배우면서 어떤 것에도 굴복하지 않는 방법을 체득했습니다. 어머니로부터는 교양을 배우고 화랑이나 오페라연주회를 따라다니며 예술 감성과 문학적 재능을 키웠습니다.

헤밍웨이는 1952년에 소설 《노인과 바다》를 발표했습니다. 이로 인해 1953년에 퓰리처상을, 1954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쿠바인 어부 그레고리오 푸엔테스가 실제로 겪은 경험을 그가 듣고 새롭게 창작한 소설입니다. 배경은 멕시코만의 한적한 어촌이요 카브리해 바다였습니다.
그는 생전에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머물렀습니다. 바다를 무대로 한 소설 《노인과 바다》의 탄생은 그의 방랑적인 기질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시카고 오크파크의 데스플레인강, 이탈리아 아말피해안, 쿠바의 아바나, 플로리다주의 키웨스트에서 보낸 시간들은 작품의 구성과 등장인물의 의식에 깊숙이 녹아 있습니다. “인간은 파괴될 수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는 표현이 뇌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가 걸어간 치열하고 자유분방했던 삶 자체가 소설 이상으로 더 소설적이라는 생각이 너울보다 강하게 밀려듭니다.
 
두 시간 남짓 머무는 동안, 찾는 사람이 몇 안 되는 오크파크는 놀랍도록 낯설고 잔잔했습니다. 여전히 흐린 분위기, 생전 그가 즐겼다는 이탈리아 와인 그라파(Grappa)나 한 잔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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