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엄기호 지음 / 나무연필 / 2018

인간은 누구나 크고 작은 육체적·정신적 고통과 함께 살아간다. 사회적인 구조가 원인이거나 개인적인 이유로, 혹은 전적으로 자기와 무관하게 벌어진 사건이나 사람으로 인해 고통을 겪을 수 있다. 그리고 최근 어느 순간부터 이런 고통을 위로하기 위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고통을 위로하는 책부터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존감을 키우라고 강조하는 책까지 다양하다. 공감이 되는 책을 읽으면 위안이 되기도 하고, 자존감을 키우기 위한 방법론적인 책을 읽고 나면 뭔가 내 문제가 해결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다시 고통스러운 일상으로 돌아오곤 한다. 고통이 한 개인의 정신승리로 해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인권 활동의 곁에 머물러 온 사회학자 엄기호의 신작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는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거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 관한 책은 아니다. 다만 긴 시간 고통받는 이들의 곁에 있었던 이의 눈으로 아는 것과 모르는 것,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사이에서 켜켜이 쌓여온 사회적·실존적 고통을 둘러싼 지층에 관해 말할 뿐이다. 해상도 높은 관찰자의 언어로 분석된 고통에 관한 사유는 고통받는 이와 고통받는 이로 인해 고통스러운 주변인들이 스스로의 고통에 함몰되지 않을 수 있는 신중하고 사려 깊은 완충을 전해준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진 이 책은 먼저 고통을 겪는 사람들과 그 곁의 풍경들을 살피며 고통을 말하는 언어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어서 고통을 소비하고 전시하는 우리 사회의 매커니즘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끝으로 고통이 야기하는 또 다른 절대적 고통인 ‘외로움’과 이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는 고통의 ‘곁’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사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렸다. 고통을 쉽게 드러내는 것은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고통에 관한 이야기 자체가 억압되었던 구조에서 우리는 자신과의 대화든 타인과의 대화든 공통의 세계를 구축하며 서로 위로하고 더 나은 사회시스템을 만들어갈 합당한 언어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최근 위로의 시대가 열릴 만큼 개개인의 고통을 담은 목소리가 넘쳐나지만, 대화가 아닌 공허한 비명의 각축전이 되어가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고통 자체는 너무도 개별적이고 절대적이어서 서로 공감하기 어렵다. 다만 고통을 대하는 신중함과 품위 있는 태도로 서로의 ‘곁’이 될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곁’의 ‘곁’이 유지될 때 고통받는 개인들이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무거운 이야기지만 가독성이 높은 책이다. 공허한 위로의 책들로는 메워지지 않았던 고통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납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위로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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