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나무.

나무는 향기를 품고 있다. 달콤한 향에서부터 고약한 향까지 다양하게. 속으로 향기를 품을 뿐 곁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 게 또 나무이다. 그러나 노골적으로 나무 이름에 ‘향’자를 달고 있는 나무가 있다. 바로 ‘향나무’이다. 어떤 향기와 이야기가 담겨있어서 향나무가 되었을까? 

향나무는 측백나무과에 속하는 늘푸른 바늘잎나무이다. 나무에서 향기가 난다 하여 ‘목향(木香)’이라 하고, 상나무, 노송나무라고도 불린다. 소나무처럼 해를 좋아하며 그늘진 데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중부 이남을 비롯해 울릉도와 동해안에 자생지가 있다. 특히 울릉도의 천연기념물 제48호 향나무는 험준한 산위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온갖 풍상을 견디느라 애를 썼는지 이리저리 꼬인 줄기가 도드라져 보인다. 이렇듯 향나무는 우리 민족과 함께 한 우리나무이다.

향나무도 꽃을 피운다. 그러나 꽃이 피어도 그것이 꽃인 줄 모르고 지나친다. 4월경 노란색을 띠는 수꽃과 가지 끝이나 잎겨드랑이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게 달리기 때문이다. 향나무는 잎이 독특하다. 어린가지에는 찔리면 아플 정도의 뾰족한 바늘잎이 달리고, 오래된 가지에는 둥글고 부드러운 비늘잎이 달린다. 대개는 심은 지 7~8년이 되면 부드러운 비늘잎이 나온다. 어릴 때는 뾰족한 바늘잎으로 자신을 보호하다가 나이가 들면 둥글둥글 비늘잎으로 한결 부드러워지는 향나무. 꼭 철없을 때 날카롭게 날을 세우다가도 나이가 들면서 유연해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

향나무도 여러 종류가 있다. 가장 흔하게 만나는 향나무는 일본에서 건너온 ‘가이즈까 향나무(나사백)’이다. 향나무의 날카로운 바늘잎이 싫어 아예 처음부터 바늘잎이 생기지 않고 비늘잎만 달리게 개량하였다. 관공서나 학교에 가면 잘 다듬어진 모습의 가이즈까 향나무를 꼭 한두 그루는 볼 수 있다. 외에도 연필을 만드는 재료로 쓰인 ‘연필향나무’, 원줄기가 누워 자라는 모습 때문에 이름 붙여진 ‘눈향나무’, 회양목 대신 정원수로 많이 심는 ‘둥근향나무’가 있다. 또 우리나라 특산 수종으로 귀하게 여기는 ‘뚝향나무’도 있다.

예로부터 향나무는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제(祭)를 지내는 곳이나, 조상에 제사를 지내는 궁궐, 묘지 등에 많이 심었다. 향나무의 속살을 가늘게 잘라 제를 지낼 때 피우는 향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서울 용두동 선농단의 향나무가 대표적이고,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종묘에 있는 향나무도 역사가 깊고 수형이 예사롭지 않다. 물론 오늘날 우리가 제사에 사용하는 향은 향나무 가루에 여러 인공 첨가물을 넣어 국수처럼 길게 뽑아낸 것이다. 

▲ 향나무.

사천에는 향나무와 관련된 보물이 있다. 곤양면 흥사리에 있는 사천매향비가 그 주인공이다. 매향비란 죽은 후 내세에 미륵불의 세계에 다시 태어날 것을 기원하며 향나무를 땅에 묻고 그 위에 비를 세우는 것을 말한다. 고려말 왜구의 극심한 횡포로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우왕 13년(1387)에 승려와 백성 등 4,100명이 계를 모아 향나무를 묻고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기를 미륵보살께 빈다’는 뜻으로 204자를 매향비에 새겼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으니 이제는 향나무가 새롭게 보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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