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나무.

겨울이 깊어간다. 수북이 쌓였던 단풍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찬바람이 그곳을 채우고 있다. 잎을 모두 떨군 겨울나무가 스산함을 더하는 때, 노란 수술의 고운 자태로 하얀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다. 차나무이다. 꽃을 보기 어려운 때에 꽃을 피우는 것에 놀라고, 꽃의 아름다움에 반한 시인들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10월부터 12월까지 찬서리를 맞으면서 더욱더 빛을 발하는 차나무 꽃을 두고 시인들은 운화(雲華)라고 칭송한다.

차나무는 주로 따뜻한 남부지방에서 심어 기르는 늘푸른잎나무이다. 잎으로 차를 만들어 마셨다 하여 이름도 차나무이다. 차나무의 ‘차’는 중국 이름 ‘다(茶)’에서 유래된 말이고, 중국에서의 ‘다’ 발음이 ‘차’로 되면서 우리도 따라 부르게 되었다. 그래서 차(茶)와 다(茶)는 같은 글자 다른 발음일 뿐이다. 예를 들면 차를 마시는 일은 일상적으로 흔히 있다는 뜻의 ‘다반사(茶飯事)’와 명절에 간소하게 지내는 제사를 ‘차례(茶禮)’라고 한다. ‘다반사’와 ‘차례’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오래전부터 일상생활에서 차를 즐겨 왔다. 차나무의 어린잎을 따서 찌거나 열을 가해 효소의 작용을 억제시켜 말린 것이 우리가 가장 많이 마시는 녹차이다. 한때 캔음료로 쉽게 마셨던 ‘티(tea)’라고 하는 홍차는 차나무 잎을 적당히 발효시킨 것으로 배를 타고 항해하는 사람들이 즐겼다고 한다. 우롱차는 녹차와 홍차의 중간 방식으로 만든 것이다.

시인마냥 차나무 꽃에 반해 들여다보다가 “어라, 열매가 달렸네”하며 놀랄 때가 있다. 보통의 나무는 꽃이 지고 난 후에 열매가 달린다. 그러나 차나무는 지난해에 맺어놓은 열매가 여물 즈음에 다른 한쪽에서 꽃이 피거나 새로운 열매가 달린다. 갈색으로 익은 열매는 세 갈래로 갈라지면서 씨를 드러낸다. 기름을 짜기도 하는 차나무 씨는 꼭 밤같이 생겼다.

중국이 원산지로 알려진 차나무는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을까? 차의 전래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있지만, <삼국사기>에 실린 신라 흥덕왕 3년의 기록을 공식으로 인정하고 있다. “828년 왕이 사신을 당에 보내 조공하고 당 문종은 인덕전에서 연회를 베풀어 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사신 대렴(大廉)이 차의 종자를 가져왔다. 왕이 그것을 지리산에 심게 했다”고 전한다. 따라서 지리산 화개동을 우리나라 최초의 차시배지로 고증하고 있다.

하동, 보성뿐만 아니라 사천도 한때 차나무를 많이 심었고, 또 곤명 다솔사는 차(茶)로 유명한 사찰이다. 다솔사에서 처음 차를 재배한 시기는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대규모 녹차밭이 있었다고 한다. 1960년 효당스님이 주지셨을 때 절 뒤편 야생 차나무를 다듬고 심어 현재까지 명차를 생산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차 문화는 불교를 통해 이어졌고, 고려시대에는 궁중에 차를 공급하는 ‘다방(茶房)’이라고 하는 관청이 따로 있었다. 차나무는 차를 공급해 주기도 하지만, 화재를 예방해주기도 한다. 사계절 푸른 차나무 잎은 불길에 잘 타지 않기 때문이다.

12월의 끝자락에 소중한 사람과 따뜻한 녹차를 마신다면? 생각만으로도 훈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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