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삼조 시인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이 찬바람에 외로워 보인다. 12월이 된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북극의 한기(寒氣)가 한반도를 뒤덮는다는 날씨 소식이 요란하다. 저 바람은 필시 시베리아와 만주 벌판을 지나 온 것이리라. 문득 이육사의 시 ‘절정(絶頂)’이 생각난다. 육사는 그 만주 벌판의 냉혹한 추위와 극악한 현실 상황을 무대로 활동하다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젊음을 바쳤다. 1904년 5월에 나서 1944년 1월 북경에 있던 일제의 한 감옥에서 모진 고문 속에 돌아가셨으니 채 40년이 안 되는 생애였다.

그의 본명은 이원록이다. 이활이라는 성명도 잠깐 썼으나 1930년 이후로는 육사(陸史)라는 이름을 주로 썼다고 한다. 이 아호이자 이름은 육사가 평생 겪은 17번의 투옥 중 최초 투옥 때의 수인(囚人) 번호 ‘二六四(264)’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조국이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되기 전까지는 영원히 죄수의 몸일 수밖에 없다는 결의를 드러낸 것이 아닐까.

그의 시 ‘절정’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매운 계절(季節)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켜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따뜻한 고향을 떠나 추운 북방으로 또 거기서도 더 험한 곳으로 쫒길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무릎 꿇을 대상조차도 없는 시인의 절규가 느껴지는 시다. 매운 계절이란 가혹한 일제의 압제를 상징한 말인 것이고, 휩쓸려 왔다는 것은 쫓겨간 것을 뜻하는 것이리라. 하늘도 지쳐 끝난 고원이란 더 쫓길 곳도 없는 상황을, 서릿발 칼날진 그 위란 위태로운 현실을,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는 것은 극한적 절망의 현실 인식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여기서도 한 발을 더 내딛는다. 그 어려운 현실에서도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한다는 대목에서, 절망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차분히 주변을 되돌아보는 지사의 자세를 상상해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겨울을 ‘강철로 된 무지개’로 비유한 대목이야말로 그 정신의 높이든 아니면 문학적 표현의 높이든 우리의 나약함에 대한 꾸지람의 높이든, 참으로 높은 세계를 드러내는 절창이다. 겨울은 당연히 일제 치하의 암담한 현실을 상징함이겠고, 강철은 차고 단단한 그 겨울의 속성을 말한 것이리라. 그리고 그 다음의 ‘무지개’는 ‘희망’을 상징하는 것이니 절망의 꼭대기인 그 겨울 속에서 육사는 다가올 ‘봄’ 곧 조국의 광복을 예상하면서 그 고난을 인내(忍耐)하고 있는 것이다.

겨울은 추운 것이 당연하고 그 추위가 최고조에 이를수록 봄은 가까이 있다. 그 추위를 견디지 못해 아름다운 봄을 맞이하지 않을 것인가. 시절이 그랬으니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으로 자신의 과오를 애써 변명하려는 좀스런 자세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저 신문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고관대작으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반성이 이 긴긴 겨울에 꼭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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