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 영화포스터.

인간의 감정을 계량화하고 작동기제를 규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기쁨과 슬픔으로 분류되는 감정은 얼추 비슷하다. 예컨대 명화를 보고 아름다움을 느낀다거나 뜻하지 않은 대형 사고를 보고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극심한 슬픔을 느끼는 경우가 그러하다. 그러나 ‘공포’란 감정이 발현하는 방식이나 트리거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모양도 다르고 강도도 다르고 공포를 유발하는 요소 또한 굉장히 다양하다. 이는 공포라는 감정 자체가 개인의 경험과 맞물려 나타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영화 <도어락>은 이 공포라는 감정이 어떻게 촉발되고 증폭되고 폭발하는 지에 주목한다. 호러나 스릴러의 흔한 관습처럼 대놓고 공포를 유발하는 공간이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 공감지수를 끌어올리는데 한 몫 한다. 현대인에게 ‘도어락’은 타인으로부터 사적인 공간을 지키는 일종의 수문장이다. 특히 전체 인구의 28.6%인 1천4백만 명에 달하는 1인 가구 시대에, 혼자 사는 여성이라면 도어락에 기대는 바가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의지해야 할 이 수문장의 역할이 한없이 허술하기만 하다. 비밀번호를 잊어먹었을 때 부르는 기술자가 손쉽게 도어락을 해제한다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상황 아닌가. 극단적으로 그 기술이 유출된다면 (공유경제도 아니고) 이 세상의 모든 집이 공유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다만 이런 허술함은 안전할 때는 드러나지 않다가 그 평온의 경계가 허물어질 때 비로소 허술한 실체를 드러낸다. 결론적으로 ‘도어락’이라는 무능한 수문장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혼자 사는 여성은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이라는 말과 동일하다는 뜻이다.

이처럼 <도어락>은 혼자 사는 직장인 여성 경민(공효진)을 앞세워 무심결에 넘어갔던 일상에 주목하고 극도의 공포를 만든다. 자물쇠를 채웠다고 결코 안심할 수 없다는 경각심을 안겨줬다는 것이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다. 장점은 정말 멋지게 부각했는데, 후반부로 가면서 기껏 만들었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게 두고두고 아쉽다. 신뢰할 수 없는 경찰력에 고군분투하는 히로인이 그저 안쓰러울 뿐 장르적 쾌감을 극대화하지 못한다. 마치 최근의 가장 인기 장르인 웹소설처럼 전형적인 용두사미 꼴이다.

그동안 충무로에는 훌륭한 인력풀에도 불구하고 여성영화가 없다고들 했는데 근래 들어서 알차게 쏟아지는 분위기다. 그만큼 흥행에 호성적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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