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포스터.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대한민국 경제도 호시절을 노래했는데, 한 순간에 허물어진 사건이 ‘IMF 외환위기’였다. 극소수의 웃는 사람을 제외하고 다들 힘겨워 쓰러지던 때, 특히 90년대 학번으로서 취업 직격탄을 맞은 입장에서는 결코 흘러간 옛 기억 만으로 남지 않는다. 불과 몇 년 만에 환란을 극복했다고 하지만 거기에는 얼마나 많은 서민들의 피땀이 배어 있었던가. 재벌은 고용유연성이라는 말로 해고의 칼날을 휘두른 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현대판 계급을 만들었다. 그 여파는 장래희망이 정규직이라는 초등학생들의 소망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즉, 이렇게나 처참한 ‘헬조선’을 탄생시킨 IMF 외환위기를 한낱 영화 소재로 활용하려면 크나큰 용기가 필요하다. 또한 <국제시장>처럼 환란에 휩쓸린 서민이 지지리 궁상으로 나와서 신파로 흐르면 어쩌나 하는 근심이 쌓인다. 그 시절을 회고하느라 바빠서 영화가 아니라 다큐로 흐를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부도의 날>은 나름 현명하다고 하겠다. ‘모성’만 강조하는 구태의연한 여성캐릭터가 아니라 강하면서도 중심이 서 있는 인물을 내세워 이야기를 끌어간다. 고통과 슬픔만을 강조하지 않고 건조하게 그 시절을 돌이킬 수 있게 만들려는 의도도 좋다. 그래서 우리가 왜 고통을 겪어야만 했는지 어설프게나마 알 수 있었던 것도 소득이다. 거의 대부분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이 아쉽지만, 중심 연기자의 엄청난 연기가 그 틈을 메운다. 바로 김혜수라는 걸출한 배우가 말이다.

‘헬조선의 기원’, ‘경제 계몽’, ‘경제스릴러’와 같은 한 줄 평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이 영화의 전달력과 파급력이 크다는 뜻일 터이다. 이 파급력의 근원에 배우 김혜수가 있다. 말이 곧 문장이 될 정도로 사유의 폭이 깊은 이 배우가 연기로 말한다. 이제는 잊고만 싶었던 그 시절을 되새기면서 다시는 이런 고통을 겪지 말자고 말이다.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놀라운 연기는 기립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리얼리즘 영화가 아니더라도 영화는 끊임없이 과거를 반추해 현실을 보고 현실을 분석해서 미래를 통찰하는 순기능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부도의 날>의 가장 큰 성과는 아무리 분노해도 바뀌지 않는 거대 시스템에 대한 의심과 각성, 통찰에 대한 요구의 메시지를 만들었다는 데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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