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완벽한 살인’아닌 “완벽한 타인”을 본 후, 지난 주에는 ‘타인’의 손에 이끌려 ‘보헤미안랩소디’를 보고야 말았다. 벌써 세 번이나 보았다는 사람도 있고 열 번을 보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도 있다. 지난 주 티비의 한 개그프로그램엔 벌써 영화 속 마지막 장면에서 노래하는 프레디머큐리를 패러디한 인물도 등장했다. 열풍이다. 가는 곳마다 퀸의 노래로 넘친다. 쿵쿵딱 쿵쿵딱 위 윌 위 윌 락 유~

프레디머큐리 주변엔 함께 음악을 시작하면서 좌절도, 영광도 함께 했던 가족 같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면서 그를 타락시키고 그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누리려 했던 자도 있었다. 가까운 이들의 배신은 더욱 뼈아프다. 단순한 돌아섬이 아니라 그 가까움으로 알게 된 비밀마저 저열한 비난과 함께 까발려졌다. 더욱이 당시는 동성애에 대한 오늘날의 이해와 관용은커녕 에이즈 확산의 주범으로 낙인찍히던 시절이었으니 얼마나 곤혹스러웠을까.

우리나라에서 현역 군인인 동성 간의 성행위를 처벌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동성애 자체는 합법이니 불법이니 하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로운 합의에 따른 성적취향 실현행위에 국가가 관여하지 않는다. 동성애의 합법화를 요구하는 측의 주장은 이성간의 혼인과 마찬가지로 법률혼을 허용해달라는 것이다.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혼인과 가족제도 속에 동성 간의 결합도 편입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관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차별, 배제, 혐오의 문화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논거도 다양하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부끄럽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못되는 이유가 동성애 때문이다 등.

평생을 약자를 위해, 정의를 위해, 인권을 위해 살아왔다는 사람조차도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만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인권변호사, 여성운동가를 자처하던 국회의원도 군인의 동성 간 성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을 규정하고 있는 군형법의 개정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닭의 성교를 의미하는 ‘계간’에서 ‘항문성교’로 법률용어가 변경되었을 따름이다. 나는 동성애자도 아니고 동성애에 찬성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차별하고 멸시하는 시선에는 단호히 반대한다. 민주주의가 다수의 지배로써 정당하다는 것은 소수자의 인권이 충분하게 보장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다수에 거슬리는 소수의 배제는 전체주의다.

영화 ‘보헤미안랩소디’를 본 우리 사회 동성애자의 감동은 더욱 컸으리라. “나는 매번 최선을 다했지, 감옥도 다녀왔지만 죄를 짓진 않았지 ... 내 얼굴에 모래를 뿌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난 이겨냈어 ... 난 계속 전진해야만 해, 우리는 챔피언이야 친구들아, 우린 맞서 싸울거야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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