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살나무

아무리 그래도 ‘작살’은 너무한 게 아닌가 싶은 나무가 있다. 사람이었다면 분명 개명까지 고민했을 이름이다. 속된말로 완전히 망가지거나 결딴날 때 ‘작살나다’라고 하고, 짐승이나 물고기를 잡을 때 사용하는 도구를 작살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작살나무는? 한여름 8월에 연분홍 빛깔로 피는 꽃과 10월에 좀처럼 보기 힘든 보라색의 열매를 보고도 이 이름을 붙일 생각을 했을까 싶다. 그러나 어쩌랴. 가지가 원줄기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두 개씩 정확히 마주보고 갈라진 게 영락없이 작살 같아서 작살나무가 되었다. 안타깝지만 애정을 가지고 불러주다 보면 정이 들지 않겠는가.

며칠 전 지리산 대원사 둘레길이 개통되었다고 하여 다녀왔다. 역시나 단풍의 고운 빛깔과 땅위에 수북이 내려않은 나뭇잎, 각종 열매, 그리고 계곡 물소리는 가을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둘레길 시작점에서 송골송골 달려있는 보라색 열매의 작살나무를 만났다. 아무리 자연이 만드는 색이 다양하고, 꽃과 나무의 색이 아름답다고 하나 ‘보랏빛 구슬’이라니? 분명 보라색은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색은 아니다. 그래서 작살나무를 만나면 신기하다. 심지어 이름까지 특이하니 오래도록 기억되는 나무이다.

작살나무는 습기가 많은 개울가에서 올망졸망한 크기의 나무들과 사이좋게 함께 자란다. 건조나 추위에 또 공해에도 잘 견딘다. 키 큰 나무가 있어도 무리하게 키자람 경쟁을 하지 않는다. 무리하게 덩치를 키우지도 않는다. 대신 적은 햇볕이나마 다 받으려고 사방으로 가지를 뻗는다. 작살나무는 외적으로 내세울게 없는 그저 그런 나무지만 열매만큼은 그 어느 나무에도 빠지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을 온통 뺏어 버리니 말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작살나무의 열매는 새를 부른다. 잎을 모두 떨구고도 열매는 늦게까지 달려 있어 새들에겐 좋은 겨울 양식이다.

산에서 자라는 작살나무의 열매에 매료되어 집 가까운 곳에서도 보려고 심기 시작하였다. 작살나무의 씨를 땅에 묻어두었다가 이듬해 봄에 심어 키운다. 최근에는 관상용으로 개량된 품종을 많이 심는다. 대표적으로 ‘좀작살나무’가 있다. 흔히 작거나 보잘 것 없을 때 ‘좀’자를 붙인다. 하여 좀작살나무는 작살나무 보다 열매가 작다. 그 작은 열매가 가지를 따라 빽빽하게 열린다. 잎에 난 톱니가 작살나무는 잎 아래까지, 좀작살나무는 잎 중간 정도까지만 잔 톱니가 나 있어서 어렵지 않게 구별된다. 흰색 열매가 달리는 흰작살나무도 있다. 뭐라 해도 작살나무는 보랏빛 열매가 달려있어야 제격이다. 가을 푸른 하늘빛과 작살나무의 보랏빛 열매가 만들어내는 풍경은 과히 환상적이다.

아이들과 숲놀이에서 작살나무를 만나면 이 나무에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보게 한다. 보라나무, 구슬나무, 귀고리나무, 보석나무 등 여럿 이름이 나온다. 모두 색깔이 주는 느낌을 살려 이름을 붙인다. 진짜 이름을 가르쳐주면 아이들은 “왜요?”, “너무 이상해요”라고 말한다. 아이들다운 반응이다. 겨울이 오기 전 작살나무를 만나는 기회를 만들기를 바란다. 어떤 이름을 붙여주고 싶은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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