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황제들의 삶은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닌 난공불락의 요새와 다를 바 없습니다. 지금껏 저지른 언행을 보면, 가히 시대를 유린하는 만고불변의 진리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현대사회에 황제라니, 기이하고 기가 막힙니다. 도대체 이 엉뚱하고 터무니없는 대명사의 주인공들은 누굴까요. 

버젓이 죄악을 저지르고는, 시간이 흘러 국민들이 건망의 세계로 적당히 빠져들어 곧 잊히기를 바라는 무리.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 죄와 법을 떡 주무르듯 농락하는 무리. 사회 문제로 부각되기 전까지는 자신의 과오에 대해 성찰할 줄 모르며, 과오를 과오로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무리. 잘못이 만천하에 드러났지만 “죄송합니다, 성실히 조사에 응하겠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 (묵묵부답)” 등 진정성 없는 궤변만 늘어놓는 지도층 인사라는 무리. 눈앞에서는 휠체어를 타야 할 정도로 중환자지만, 눈 뒤에서는 혈기 왕성하고 튼실하여 제멋대로 놀고먹고 마시며 천방지축 안하무인으로 날뛰는 무리, 돈 앞에 무릎 꿇고 돈의 노예가 되어 양심도 양식도 정의마저도 가차 없이 내팽개치고 짓밟는 무리. ‘황제’를 하나하나 까발리며 정의하려니 끝이 없습니다.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마치 깊은 수렁에 빠진 듯합니다. 

사회와 조직 속에서 ‘개인’을 중시하는 의식 혁명을 주장한 미국 심리학자 웨인 다이어Wayne W. Dyer는 정의를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의라고 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개념이다. 지방 법원이나 경찰서에 찾아가 보면 세력가들은 별천지의 법을 적용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극단적인 표현에 처절한 절망감이 듭니다. 부당한 사례를 보면서도 타인의 일처럼 여겨 아무런 의식 없이 이를 수용해야 하는지요. 아니면 마땅히 이를 부정하고 정의의 수호신을 자처하며 붉은 띠 두르고 투쟁 대열에 나서야 하는지요. 갈등과 번민의 혼란 속에서 머뭇거렸던 상념을 추스르고, 다시 시민들의 촛불혁명에 힘을 실어야겠다고 마음을 다집니다. 

이제 현장을 찾아 몇 몇 황제들의 거룩하고 숭고한 발자취를 더듬어 보겠습니다.

대주그룹 허재호 회장, 그는 2007년 508억 원 탈세와 회삿돈 100억 원 횡령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 원을 선고 받았지만 벌금을 못 내겠다며 노역을 선택했습니다. 일당은 5억 원. 판사가 밝힌 책정 이유는 개인적인 이득이 없었고 탈세액 완납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황제 노역의 탄생 배경치곤 너무 허술해 보입니다. 초인초법적인 재량을 가진 법관의 어마하고 무시무시한 위대함에 감히 황당무계한 경의를 표해야겠지요.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 그는 2011년 섬유 제품 생산량을 조작하여 421억 원을 횡령하였습니다. 확실치 않은 간암으로 병보석 판정을 받아 풀려났지만 음주·흡연을 일삼았고, 불법·편법으로 3대 경영권 세습을 위해 부당한 상속을 진행했습니다. 가족 회사에 전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 고위 공직자 골프 접대하기 등 황제 보석, 황제 경영을 자행했지만 법은 보이지 않습니다.

▲ 송창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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