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시장경제 논리만으로 벼 수매가 결정 '안 될 일'

올해도 풍년이라지만 농심은 어느 때보다 멍들었다. 성난 농심을 달랠 정부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우리 나라에 농민의 날이 있다.

바로 11월 11일이 농민의 날이다. 十一월 十一일. 이를 합치면 土, 土가 되니, 평생 흙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 온 농민을 기리자는 취지일 것이다.

농민의 날은 농업이 국민경제의 근간임을 국민에게 인식시키고, 농업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해 지난 1996년에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올해로 벌써 13번째 기념일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11월 11일은 빼빼로 데이다. 굳건한 1자 네 개가 나란히 겹치는 11. 11의 형상이 빼빼로와 닮았다고 해서 생긴 듯하다.

빼빼로 데이가 무슨 연유로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짐작컨대, 상업주의에 물든 얄팍한 상술이 빚어낸 국적불명의 기념일이 아닐까?

그런데 정작 11월 11일이 되면 이 날이 농민의 날임은 별 관심 없고 빼빼로가 더 성행한다. 초중등학교에서는 더욱 그렇다. 빼빼로를 서로 주고 받으면서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는가 하면, 서로 소원했던 관계를 개선하고 좋은 친구로 거듭나려는 좋은 취지도 있지만, 부작용이 더 많다.
무분별한 낭비를 조장하는가 하면, 빼빼로 주고받는 행위로 편가르기를 시도하고, 심지어 주고받는 양으로 인기와 능력을 가늠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 틈에서 빼빼로를 살 만한 여유가 없는 가난한 학생은 소외감에 젖어 친구와 더욱 멀어지는 슬픈 현상이 벌어진다. 소외 받은 가난한 학생은 무능한 부모와 불공평한 친구, 사회에 대해 원망과 미움을 일찍부터 배우고 있지는 않을까?
무분별한 어른들의 상업주의가 동심을 멍들게 하고 있다.

지금도 특정 산업분야 지원책은 다양하고 과감하다. 물론 농업분야 지원책이 없지 않지만, 이른 바 잘 나가는 산업분야에 비하면 농업의 희생이 매우 컸다. 벼 수매가를 시장경제에만 맡겨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이유다.
마찬가지로 글로벌 시대에, 무분별한 시장 개방이 농심을 멍들게 하고 있다. 먹을거리의 신성한 생산수단인 땅은 이미 산업화 시대에 가치 논란의 재화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 평에 얼마짜리로 땅을 논한다. 선대로 물려 받은 전답이 농사짓기 좋은 옥답의 개념은 이미 사라지고, 개발논리에 따른 용도와 가치를 따지는 시대다. 순수 농사만 천직처럼 지어온 농민은 이제 우리 사회의 하층민으로 전락하고, 우리 농민이 생산해 내는 농산물은 개방화, 국제화 시대에 가장 경쟁력 없는 산업 생산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워 온 작물을 트랙터로 무참히 갈아 버리는가 하면, 애써 가꾼 무, 배추를 원망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일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철저히 수요 공급의 원리가 지배하는 시장 경제에 농민들이 맨몸으로 내동댕이쳐진 결과이다.

개방화 시대에 농업의 경쟁력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본다.

다른 산업 분야에서 정부가 기울인 노력을 생각해서 이제 농업과 농민에 대한 과감하고도 새로운 인식과 정책이 시급한 때다.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 중소기업이 자금난을 겪고 있다 하여, 은행을 닦달하고 대책을 세우느라 분주했던 정부다. 물론 잘 하는 일이다.
우리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철강, 선박, 휴대폰, 자동차 등의 경쟁력 확보와 수출 다변화를 위해 정부가 환율에 매달리고 각종 지원책을 강구했다. 지금도 10년 이상 된 노후차 교체에 따른 취 등록세 특별 감면 혜택이 연말까지 유지되고 있고, 이에 힘입은 국내 완성차 업체는 지난 달에 사상 최대의 내수 판매를 실현했다. 정부에서 나라 경제 살리겠다고 하는 일인데, 물론 잘 하는 일이다.
작년 미국의 리먼 사태 이후 전 세계 금융 위기 속에서 국내 은행의 부실 경영으로 인한 은행의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가 은행의 장단기외채에 지급 보증을 서기도 했다. 은행의 건전성 확보는 우리 경제의 근간을 세우는 일이니 물론 정부가 잘 한 일이다.

산업과 금융의 각 부분에 정부의 따뜻한 정책이 결과를 거둔 것인가?
우리 경제는 지난 1년의 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 G20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제 다른 곳에 할 만큼 했으니까, 이제부터라도 농민, 농업에 눈 돌려, 그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제대로 된 정책 한번 펼쳐야 하지 않을까?

지난 6일 통계청은 올해 쌀 수확량이 468만2000t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평년(456만5000t)보다는 2.6% 많고, 풍년이었던 지난해(484만3000t)보다는 3.3% 적은 양이다. 올해 쌀 예상 수확량 468만2000t은 통계청이 지난달 15일 전국 3000개 논을 표본 조사해 추정한 것이다. 통계청은 이달 중순 한 차례 더 조사를 해 다음 달 초 최종 전망치를 발표한다.올해 쌀 생산량이 평년작을 11만7000t가량 웃돌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정부는 쌀값 폭락을 막기 위해 올해 중 공공비축미 37만t과 별도로 쌀 10만t을 더 사들이기로 했다. 현재 산지 쌀값은 지난해 풍년으로 인한 재고 증가와 올해 작황이 좋을 것이라는 전망이 겹치면서 1년 전보다 10%가량 떨어진 상태다.

어제(10,7) 경남 사천 지역 농민들이 주축이 된 나락값조정위원회(공동 대표 이창은, 이득상)가 올 추곡 수매가를 40Kg당 62,070원으로 결정하고 정부에 수매를 촉구했다.
정부 비축미 고시가 56,430원에서 생산 인상요인을 감안하여 10% 오른 가격이다.
그러면서 농민들은 나락값 폭락을 막기 위해 쌀 40만톤을 대북 지원할 것과 쌀소득보전직불금 목표가격을 21만원으로 상향 조정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오죽 했으면 생산자인 농민이 벼 시장가격 안정을 위한 소비 방안까지 제시했을까?

정부는 우리의 시장 개방 정책(본격적으로 한-칠레 FTA협상타결 이후)에 즈음하여, 우리의 농업, 농민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여러 방안과 정책을 강구했지만, 사실 그런 방안과 정책들이 실질적인 농업 경쟁력 제고에 별 효과가 없음을 보아 왔다.

따라서 전 세계적 산업의 개방 구조 속에서 농민과 농업이 느끼는 소외감과 소득 불평등은 이제 방치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농민들의 주 소득인 벼 작물의 수매가를 단순한 시장논리에 맡길 수 없는 특수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벼 수확이 끝나고 벼 수매가와 수매량을 두고 농민과 정부가 연례행사처럼 줄다리기를 할 것이다.

진정 멍든 농심도 달래고 정부도 정책 수행에 흠이 되지 않는 컬럼버스의 달걀과 같은 지혜를 발휘할 때다.

다가오는 농민의 날이 농민만이 아니라 전 국민의 진정한 축제의 날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지난해 추곡수매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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