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나무.

그 곳이 어디든 산에 오르면 은행나무도 아닌데 노란단풍이 예쁘게 든 나무가 있다. 이른 봄에 노란색 꽃으로 신고식을 했고, 가을이면 노란단풍으로 다시 한번 존재감을 드러내는 나무, 생강나무이다. 며칠 전에 오른 산에서도 어김없이 생강나무를 만났다. 생강나무 앞에 서면 통과의례처럼 꼭 하는 행동이 있다. 잎을 따다가 짓이겨 냄새를 맡는다. 진짜 생강만큼의 진한 냄새는 아니지만 은은한 생강향이 자극한다. 꽃이나 잎, 가지에서 생강 향이 난다고 하여 생강나무라 부른다.

우리가 산에서 흔하게 만나는 생강나무는 사람 키 정도의 자그마한 나무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더 가깝게 느껴진다. 손만 뻗으면 단풍든 노란 잎을 잡을 수 있고, 잎 사이에 숨겨진 붉고 검은 작은 열매를 만질 수 있다. 크기는 작아도 이 열매가 꽤 쓸모가 있다. 열매 안에 든 씨앗으로 기름을 짜서 등잔불을 밝히기도 하고 여성들의 머릿기름으로 쓰기도 했다. 따뜻한 남쪽의 진짜 동백나무의 씨앗으로 짠 동백기름이 양반가 여성들의 고급진 머릿기름이었다면, 생강나무의 기름은 서민의 아낙들이 주로 애용했다.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누구나 한번쯤 읽어 보았을 개화기 소설 김유정의 ‘동백꽃’에 나오는 구절이다.

‘알싸하다’고 표현하고 ‘향긋한 냄새’, ‘노란 동백꽃’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아는 사시사철 푸른 동백나무가 아니다. 생강 향을 간직한 ‘생강나무’이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생강나무를 ‘산동백나무’, ‘동박나무’, 또는 아예 ‘동백나무’라고 부르기도 하니 춘천 출신의 김유정의 동백꽃이 꼭 틀린 것은 아니다. 강원도 <정선 아리랑>에도 동박나무, 즉 생강나무가 언급되어 있다.

생강나무는 음식에 양념으로 넣는 생강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에 생강나무의 어린 가지와 잎을 말려 가루로 만들어 향료로 사용했고, 한방에서는 약재로도 사용했다. 산후조리, 배 아플 때, 가래를 없애는 데에 가지를 달여 마시면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옛사람들은 음식물을 잠시 저장할 때 개미나 파리가 모여드는 것을 막기 위해 생강나무의 잎이나 가지 껍질을 벗겨 덮었다고 한다. 이래저래 생강나무는 그 특유의 향으로 제 몫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아이들과 숲놀이 할 때 생강나무를 만나면 꼭 잎을 따다가 향을 맡게 한다. “무슨 향 같아?”물으면, “글쎄요. 많이 맡아본 향인데...”한다. “생강 냄새 알아?”, “맞아요. 생강. 그 냄새 저는 싫어해요.” “그럼, 이 나무 이름은 절대 안 잊어먹겠네. 생강 냄새가 나는 생강나무야.”

사실 생강나무하면 이른 봄에 피는 꽃을 빼고는 얘기할 수 없다. 봄은 노란색으로 시작한다고 했던가? 노란단풍으로 인해 가을에 만난 생강도 매력적이지만 ‘봄의 전령’이라는 생강나무의 노란 꽃에 감탄하지 않는 이가 없다. 흔히 산수유 꽃과 견주어 소개되는 생강나무 꽃. 이 꽃을 보지 않고는 봄을 제대로 느꼈다고 말하기 어렵다. 올 겨울을 건강하게 보내고 새봄을 맞이하게 되면 생강나무의 꽃을 꼭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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