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헌법재판소는 병역법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를 병역의 일종으로 정하지 아니한 것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며칠 전 대법원은 종교적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사람에 대한 병역법 위반 사건에 대해,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면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입영에 응하지 않을 수 있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무죄취지로 사건을 원심으로 돌려보냈다.

의무복무제가 시행된 지 70년 동안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일률적으로 구속되어 징역 1년 6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아왔고, 그간 하급심에서 종종 이들에 대한 무죄판결이 있었지만 대법원에서 모두 파기되어 왔었는데,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3명의 대법관 중 9명의 다수의견으로 종전의 대법원판결을 파기한 것이다.

종전 대법원판결은 병역거부자의 양심실현의 자유가 국방의 의무보다 우월하지 않으므로 양심은 입영거부의 정당한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어떠한 권리나 의무가 각각 혹은 그 상호간에 충돌하는 경우에 덜 중요한 하나를 배제하고 더 우월한 다른 하나만을 인정하는 것은 민주주의원리에 배치된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이번 대법원판결은 헌법상 기본권 규범과 국방의 의무 규범 사이의 충돌을 조화롭게 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가치에 부합한다고 전제하고 있다.

즉 양심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의 이행할 수 없고 그러한 병역의무의 이행은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를 스스로 파멸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제재라도 감수하면서 이를 거부해오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국민에게 주어진 국방의 의무의 신성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고 국가의 존립이 무너지면 기본권 보장의 토대가 무너진다.

여기서 개인의 기본권과 국방의 의무가 충돌하지만 어느 것을 우선시하여 다른 것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롭게 조정할 필요가 제기된다는 것이다. 전쟁을 반대하고 살육을 거부한다는 양심의 실현으로 군사시설을 파괴하는 등의 적극적인 행위가 아니라, 입영을 거부하는 소극적 부작위에 의한 양심실현의 자유에 대해 형벌로써 제한하는 것은 과도한 제한이나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 되는 한편, 연 600명 정도에 불과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현황과 우리나라의 경제력, 국방력 등에 비추어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다고 하여 국가안보에 어려움이 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양심과 종교를 핑계로 병역의무를 회피하는 사례가 속출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국가의 안전과 국민간의 형평성을 고려한 염려임에 의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한 지배를 의미하지만 소수자에 대한 배려에도 충실해야만 그 진정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대법원도 자유민주주의는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전제로 할 때 정당성을 가지는 것이고, 국민 다수의 동의를 받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감내하면서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국가가 외면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한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불가능을 요구할 수 없다. 양심상 허락되지 않는 불가능한 일을 국가라는 이름으로 강요하는 곳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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