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0 월
연재/기획
[인향만리] 여무는 것이 곡식뿐이랴
정삼조 시인  |  webmaster@news4000.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10.10  16:25:47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Kakao Kakaostory
   
▲ 정삼조 시인.

저 더웠던 여름을 지나 9월도 가더니 어느새 10월이 되었다. 찬바람이 아침저녁으로 불고 낮의 매미소리 사라진 자리를 밤의 귀뚜라미 소리가 대신한다. 밤이 길어지니 아무래도 생각에 잠길 기회가 생긴다. 옛날 읽었던 책을 다시 한 번 더 음미해 보고 기억을 더듬어 스쳐간 인연을 꼼꼼히 되새겨 봄직도 하다. 사람의 머리는 성능 좋은 컴퓨터보다 훨씬 편리해서 명령어를 입력할 필요도 없고 몇 십 년 전의 일도 눈 깜짝할 새에 재생해 낸다. 그 좋은 머리로 이 선선한 기회를 그냥 보낼 것인가. 이 가을에 여무는 것이 곡식만은 아닐 것이다. 한 살 나이를 더 해 한 살 늙은 것이 아니라 한 살 더 여물어진 무언가를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가을날의 사색을 돕기 위해 시 몇 편을 소개할까 한다. 

지난봄의 어느 날엔가 이 칼럼에서는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落花)’를 소개한 적이 있다. 꽃이 져야 열매를 맺는 것이니 지금의 꽃이 진다는 이별이 슬픈 일이기는 하지만 마냥 슬퍼할 것만이 아니라 미래의 아름다운 열매를 위해 인내해야 하리라는 뜻을 노래한 시라고 해설을 붙인 기억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슬프지만 돌이켜보면 아름다운 이별의 기억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으리라 믿는다. 꼭 남녀 간의 이별만 아니라 지나고 보면 특히 슬픈 모든 인간사에 의미 없는 것은 없다. 그 인연 따라 성장하면서 내 영혼도 여물어 왔다. 낙화의 마지막 두 행인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처럼.

조병화 시인의 ‘가을’도 ‘낙화’와 같은 맥락에서 읽어볼 수 있는 시다.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한 편 그림을 보는 듯 해설이 필요하지 않는 시다. 짧으니 전문을 소개한다. “어려운 학업을 마친 소년처럼/ 가을이 의젓하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푸른 모자를 높게 쓰고/ 맑은 눈을 하고 청초한 얼굴로/ 인사를 하러 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참으로 더웠었지요” 하며// 
먼 곳을 돌아돌아/ 어려운 학업을 마친 소년처럼/ 가을이 의젓하게 높은 구름의/ 고개를 넘어오고 있습니다“

안도현 시인의 ‘가을 엽서’도 이 가을에 음미해 볼만한 시다. 역시 설명 없이 전문을 인용한다.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 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문정희 시인의 시 ‘가을 노트’는 아름다운 시다. 앞서 소개한 시들에 비해 감성이 다소 강하다. 해설은 역시 사족(蛇足)에 불과할 것이다. 지면 관계상 두 연만 소개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물이 드는 것/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홀로 찬바람에 흔들리는 것이지// 그리고 이 세상 끝날 때/ 가장 깊은 살 속에/ 담아가는 것이지”
시는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아도 읽을 수 있고 길이에 비해 많은 생각을 담고 있다. 인터넷에만 접속할 수 있다면 깊어가는 가을을 더 깊게 해 줄 시들은 많다.

<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편집규약후원안내독자위원회광고문의기사제보독자투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공무수행사인현황
제호:뉴스사천 | 명칭:인터넷신문 | 등록번호:경남아00051 | 등록연월일:2008년 7월 9일 | 발행연월일:2008년 8월 29일 | 발행인:하병주 | 편집인:강무성 | 청소년보호 책임자:강무성
발행소(주소):경남 사천시 사천읍 역사길 9 KT사천빌딩 2층 (우)52519 | 전화번호:055-855-4040 | 팩스번호:055-855-4041 | mail:webmaster@news4000.com
Copyright © 2011 뉴스사천.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ews40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