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정희 시. 사랑해야 하는 이유. 35×150. 2018.

부족한 사람을 마주 하니 세상의 공기 다 마시고 있어도 숨쉬기 힘들 정도로 답답함에 숨이 차올랐다. 넘치는 사람을 만나면 오히려 그 혼란스러운 공기를 차단하려 입을 닫아 버린다. 

권모술수를 즐겨해 참 싫어라 하는 그 남자와 가까이에서 지낸다는 그녀가 있다. 처음 본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조목조목 말을 잘하고 틀린 말이 하나 없으며 어린애 같은 순진함까지도 있다. 그런 그녀의 조목조목이 화근이 되었다. 모든 것을 설명하려 들고 모든 것이 궁금한 그녀는 나에게 한없이 말을 던진다. 하지만 나는 선입견 하나로 말을 섞고 싶지가 않았다. 싸늘한 시선으로 “조용히 좀 해 주실래요! 저리로 가 주세요!” 그래도 넘치는 그녀는 계속 관심을 보이며 따라와 말을 걸어온다. 순간 나는 화가 나 버렸다. “시끄러워! 저리 꺼져!” 화들짝 놀라며 그 자리에서 멈추어 버린다. 영문도 모르는 그녀는 그 뒤부터 나를 보면 눈빛이 불안해지고 저 멀리에서 돌아섰다.

뭐하는 짓인가 내가. 젊은 친구를 선입견 하나로 미운털을 꽂아 대고...... 자리로 돌아와 있는데도 젊은 사람 상처 준 게 걸려 마음이 편치가 않다. 붓을 잡아보고 먹을 갈아보며 이것저것 해 보았지만 마음이 지옥이었다. 그때 책상 위 시집 한권이 눈에 들어와 박힌다. 문정희 시인의 사랑해야 하는 이유. 그래......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 성경에서 불경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시인의 시집에서 찾았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의 강물을 나눠 마시고/ 세상의 채소를 나누어 먹고/ 똑같은 해와 달 아래/ 똑같은 주름을 만들고 산다는 것이라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세상의 강가에서 똑같이/ 시간의 돌멩이를 던지며 운다는 것이라네/ 바람에 나뒹굴다가/ 서로 누군지도 모르는/ 나뭇잎이나 쇠똥구리 같은 것으로/ 똑같이 흩어지는 것이라네.                                         
-문정희 “사랑해야 하는 이유”

간혹 지켜보면 그녀는 여전히 천성대로 넘치고 있었다. 어느 날 지나가며 “좀 쉬시지요. 그건 당신이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니 좀 편히 있어요” 이 한마디에 그녀는 화색이 돌며 또다시 넘치려 한다. “아뇨, 그냥 있음 뭐하나요. 제가 재미있어 하는 거예요.” 나는 그저 웃어만 주었다. 사람 잡는 일 말고 사람의 마음을 잡아서 다행이니 시인의 시 한편이 종교보다도 더 거룩한 일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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