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사브 출혈 초저가 입찰 공세에 밀려 고배
항공국가산단, T-50 해외수출 등 위기감 팽배
시민사회단체“위기 극복에 힘 모으자” 시민대회 열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미공군 차기 고등훈련기 교체(APT·Advanced Pilot Training) 사업 기종 선정에서 최종 탈락하면서 지역사회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 공군은 27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차기 고등훈련기 교체 사업 우선협상대상자에 보잉(미국)-사브(스웨덴) 컨소시엄의 ‘TX-1’이 선정됐다고 밝혔다. 계약 규모는 92억달러(약 10조2000억원)로 확인됐다. 입찰은 최저가 낙찰 방식으로 진행됐다.

APT사업은 미 공군이 현재 운용중인 노후화된 T-38C를 교체하는 미 고등훈련기 교체사업으로, 1차분 물량만 350대에 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보잉이 써낸 92억 달러는 당초 예상 비용인 197억 달러에 비해 절반 가까이 낮은 금액이다.

하지만 이번 수주 실패는 KAI와 국내 항공업계가 감당해야할 숙제로 다가왔다.

당초 KAI는 이번 수주에 성공할 경우 향후 미국 해군 후속 기체 사업(약 33조 원), 제3국 수출시장 개척(약 50조 원) 등에도 영향을 미쳐 총 100조원 규모로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APT사업의 안정적인 일감을 바탕으로 민수분야 확대 등에 적극 나서겠다는 계획도 이번 실패로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KAI는 올해 약 2조7000억 원의 신규 수주 목표를 세웠지만, 상반기 실적은 2500억 원에 그친 바 있다. 이번 APT사업 수주 실패로 올해 수주 목표액을 채우는 것에 빨간 불이 켜졌다.

KAI의 고등훈련기 T-50과 FA-50 경공격기 제3국 수출에도 먹구름이 꼈다. 미 공군이 보잉-사브 컨소시엄의 TX-1을 선택한 만큼 유럽과 동남아 등 국가에서도 성능은 좋지만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싼 T-50을 외면할 가능성이 있는 것.

또한 이번 APT사업 수주 실패는 또 다른 역점사업인 한국형전투기(KF-X) 개발사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KF-X 사업의 경우 사업 파트너인 인도네시아가 분담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않아 삐걱거리고 있는 상태다.

최근 해병대기동상륙헬기 마린온 추락 원인 중간조사 결과가 에어버스사 해외 하청업체 부품 결함으로 나왔으나, 수리온 계열의 동남아 등 제3국 수출 등은 난항을 겪고 있다.

사천과 진주에 건설 예정인 경남항공국가산단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2년 전 수요조사에서는 용지 분양이 순조로울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번 수주 실패로 항공부품 업체들의 입주 수요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APT사업과 MRO사업 추진 등에 따른 인구 유입을 기대하며 사천 곳곳에서 추진되고 있는 아파트 건설 역시 미분양 사태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자칫 잘못하면 지역 항공부품업계의 위기로 확대될 수 있다”며 “이번 APT사업 실패를 상쇄할만한 정부의 지원책과 항공분야 육성정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경수 도지사도 1일 실국장 회의를 주재하며, KAI의 APT사업 수주 실패에 대한 대응책 마련을 주문했다. 김경수 도지사는 “이번 기회에 KAI의 경영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군수산업보다 민간대형항공기산업과 국가 차원의 항공우주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지원책 연구를 당부했다.

지역시민사회단체와 봉사단체들은 지난 1일 오후 2시 사천시청 2층 대강당에서 ‘항공 산업 위기 극복을 위한 사천시민대회’를 열었다.

지역시민사회단체와 봉사단체들은 지난 1일 오후 2시 사천시청 2층 대강당에서 ‘항공 산업 위기 극복을 위한 사천시민대회’를 열었다.

강연우 사천사회단체협의회장은 “불과 얼마 전까지 KAI의 고성 문제로 지역단체들이 규탄 목소리를 냈으나, 더 큰 위기가 왔기에 위기극복에 힘을 모으자는 취지로 시민대회를 열게 됐다”며 “KAI와 지역사회가 함께 이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출장 중인 송도근 시장을 대신해 연단에 선 박성재 부시장은 “미국 고등훈련기 교체사업에서 보잉의 출혈저가공세에 밀려 KAI가 탈락하면서 우리나라 항공 산업 발전은 물론 항공기 수출길도 험난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시민들이 똘똘 뭉쳐 이 위기를 극복한다면 항공우주산업허브도시 건설이라는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사천시민대회에서는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 KAI 경영진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여상규(자유한국당·사천남해하동) 국회의원은 “미 공군은 지난 연말 APT사업자를 결정할 예정이었지만, 문재인 정부의 감사원 감사와 검찰의 방산비리 수사로 시간을 끌면서 결국 KAI가 탈락하게 된 것”이라고 문재인 정부 책임론을 제기했다.

그는 “우리나라 항공 산업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호기를 날려버린 문재인 정부에 대해 이번 국감에서 집중 추궁하겠다”고 목소리 높였다.

또한 여 의원은 “KAI 날개공장이 고성으로 가는 것도 김경수 도지사-백두현 고성군수-김조원 KAI사장의 코드 맞추기 아니냐. 이제 KAI공장 고성 가는 것도 더 볼 것 없이 반대하겠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연사로 나선 이원섭 사천포럼 대표는 “이번 일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며 “KAI사장은 이번 기회에 사퇴해야 한다. 정부는 새로운 전문가를 임명해 이 난국을 헤쳐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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