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빛광. 30×20. 2018.

북촌에서 성북동으로 넘어가는 구불구불한 길을 달려 북악산을 오르니, 도시의 야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성북동의 담장 높은 부촌 불빛이 북한산 밑으로 소반에 담긴 보석처럼 색색이 영롱하기만 하다. 멀리 올라와 버린 탓일까. 반짝이는 불빛들은 세공이 정교하게 이뤄진 작은 알알이 보석처럼 내 눈동자에 박혀 버렸다. 경포대에서 다섯 개의 달을 찾던 그 풍류객마냥 나는 북악팔각정에서 눈으로 보석을 꿰고 있는 낭만객이 되어 있었다. 그렇더라. 저 아래 거리에서 야경을 올려다 볼 때는 도시는 온통 큰 원석처럼 웅장하게 빛나 보였고, 힘껏 올라와 내려다보니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보석들을 참 화려하게도 뿌려 놓았다.

나는 예전부터 유별나게 불빛을 사랑했다. 산이 좋으냐 바다가 좋으냐고 물으면 생뚱맞게도 불빛이 좋다 했던 기억이 난다. 이곳에 서서 나는 멍하니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불빛을 사랑했던 기억을 잃었고, 그럴만하게 바쁘게 살고 있었다는 생각에 코끝이 시려왔다. 서른 즈음, 바닷가 도시로 내려오면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불빛을 한가롭게 바라볼 수 있는 장소를 찾아 헤맸고, 나는 가끔 마음이 힘들 때마다 그곳으로 가서 실컷 울었던 그런 곳이 나에게도 있었다. 나는 그것을 한동안 까맣게 잊고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기억컨대 불빛을 병적으로 좋아했던 탓에 아파트단지 속 타인들이 만드는 불빛을 포기하고 산 아래 들녘에다 오징어 배 띄워 놓은 듯 불빛이 넘치는 집을 만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불빛을 바라보며 살 수 없는 여건이라면, 그렇다면 내가 있는 공간을 그것으로 만들어 놓으면 그만이란 작정으로 당돌한 나만의 불야성을 갖게 되었다.

밤 여덟시 화려한 서울의 그곳을 떠나와 새벽 한시 남쪽바닷가 어느 소도시의 칠흑 같은 어둠속을 뚫고 집으로 달리며, 내가 사랑했던 게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상기시켜 주었던 기억이 참 슬프게도 잔인했다. 그래, 지금은 가을이었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