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삼조 시인.

이상(1910∼1937)은 일제강점기에 나서 요절한 천재 문인으로 알려졌다. 1931년에 정식으로 작품을 발표했으니 그 수습과정을 포함해도 불과 10년도 안 되는 시간에 한국 문학에 한 획을 그은 시 ‘오감도’ 소설 ‘날개’ 등의 수많은 작품들을 생산한 까닭이다. 그 이상이 1936년 구인회 동인지인 ‘시와 소설’ 발간에 붙여 “어느 시대에도 그 현대인은 절망한다. 절망이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는 말을 남겼다. 기교가 결코 본질이 될 수 없다는 문학이론으로 읽힐 법한 말이지만 그 중 “어느 시대에나 그 현대인은 절망한다”는 말만 뚝 떼어놓고 보면 그냥 문학이론만으로 흘려듣기엔 그 무게가 만만치 않다. 

이상이 살았던 시대는 그야말로 암흑시대였을 것이다. 그 시대 사람들을 모두 친일파 아니면 독립운동가로 이분법해 버릴 수야 당연히 없는 일이지만, 그 친일파도 아니고 독립운동가도 아닌 사람들은 처신하기가 몹시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특히 공직에 나아간다는 일은 자칫 친일행위 아니면 최소 부역행위는 되었으리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니 일제 때 제 조상이 면장을 했느니 군수를 했느니 집안 자랑을 하는 얼간이의 말에 혹하는 더 얼간이도 때로 있지만, 그 시대 조선총독부 건축기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건강상의 이유로 팽개치고 금전과 별 관계없는 문학의 길로 들어선 이상에게 그 시대는 분명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시대만 그런 게 아니라 어느 시대의 사람에게나 삶의 길이란 너무 힘들어 절망적일 수밖에 없었으리라고 스스로를 위로한 것은 아니었을까.

시대를 이야기하자면 이상보다는 한 세대쯤 앞선 신미양요(1871년) 무렵에서 시작해 대한제국(1897∼1910) 시대를 주 무대로 하는 젊은이들을 다룬 요즘의 TV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흥미를 끈다. 이 드라마의 주축은 한 명의 양반집 아가씨와 세 젊은이가 이룬다. 그밖에 친일파와 그 친일파에 맞서는 의병(양반, 도공, 포수 등)이 나온다. 아가씨는 벌써 의병으로 활동 중이고 세 젊은이는 각각 아가씨의 정혼자였던 동경유학파, 도주 노비였다가 미국에서 귀환한 미군 장교, 백정 신분이었다가 역시 귀환한 일본낭인집단의 우두머리로 분해 있다. 

세 젊은이들이 모두 아가씨를 사랑한다는 로맨스를 얼개로 하여 사건이 주로 진행되고 있지만 그 행동들은 조선의 백성이라는 점에서 각기 제약을 받는다. 말하자면 이 시대의 나에게 나라는 어떤 존재며 그 나라의 안위를 위해 나의 역할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고뇌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백정 노비 포수 출신들은 나라에 대해 혜택은 털끝만치도 받지 못한 채 고통과 절망만 받았던 잊지 못할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 시대에 내가 살았더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하는 생각을 절로 떠올리게 하는 데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드라마란 생각이 든다. 

2018년의 대한민국은 어떤가. 이상의 말대로 어느 시대에나 절망적이었던 것만큼이나 과연 절망스러운 시대인가. 아니면 어느 시대에나 절망적이었던 것처럼 이 정도 절망이라면 그런대로 버텨볼만한 시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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